-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7/09/21 18:02:16
Name   tannenbaum
Subject   조카사위 이야기.
처음 조카사위를 만난 자리는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아니다.. 사실 언놈인지 만나면 반 죽여놀 생각이었다. 이제 스물두살 기집애를 임신을 시키다니.. 그 앞날 창창한 어린애를... 그것도 열한살이나 많은 서른 세살이나 먹은 쉰내 나는 늙다리가 감이 누구를 건드려...

지 엄마보다 먼저 삼촌인 나에게 소개하는 이유는 안봐도 뻔했다. 길길이 날뛸 예비 장모이자 내 형수 성격을 알기에 나에게 지원사격을 해달라는 것이겠지. 아... 이 기집애 지 맘대로 대학입학 취소하고 등록금 들고 모델인지 지랄인지 하겠다고 서울로 올라왔을 때 다리 몽둥이를 뿐질러서 광주로 돌려 보냈어야 했는데 역시 삼촌은 부모가 아닌것 같아 죄책감까지 들었다. 마냥 이뻐하고 사달라는 거 해달라는 거 오냐 오냐 해준게 독이 된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부글부글 끓는 마음을 다잡고 일식집에 미리 도착해 숨을 고르고 있을즈음 조카와 웬 시컴헌 사내놈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하아.... 서른셋이라더니만 노안도 이런 노안이 없었다. 그나마 머리숱은 풍성하니 다행이랄까. 그 친구도 좋은 소리 못들을거 예상했다는 듯 도살장 끌려온 소 마냥 눈만 뎅그러니 뜨고 발발 떨고 있는 게 보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아무개 입니다.'

'반갑습니다. 00이 삼촌 타넨바움이오'

'아... 아닙니다. 말씀 편하게 하십시오. 작은 아버님...'

'그래요? 후회할텐데.....'

아마도 폭발 직전인 내 기분을 눈치 챘는지 조카사위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눈치만 보는 와중에 철딱서니 없는 가시네는 뭐가 그리 좋은지 '오빠. 이거 먹어봐, 저것도 진짜 맛있다, 어머 어머 이게 꽃새우인가봐..' 그걸 보는 나는 얼척이 없었다. '속 창아리 없는 년..'

'그래 자네 공무원이라고?'

'네 어디어디 무슨무슨일 하고 있습니다.'

'이제 어떡할 생각인가?'

'일단 오늘 작은 아버님 뵙고 주말에 광주 내려가 장모님께 허락받는대로 최대한 빨리 식 올릴 생각입니다. 제 부모님은 00이 마음에 들어하시고 이미 결정하셨습니다'

술 한잔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썩 괜찮은 놈 같아 보였습니다. 뭐 노안이긴 하지만 깔끔하니 잘생겼고 키도 크고 덩치도 좋으니 힘도 좋을듯 하고... 공무원이면 큰 돈은 못 만져도 안정적일테고... 부모님 도움을 받긴 했지만 자기 명의 작은 아파트도 하나 있고... 무엇보다 순딩순딩한게 밖에서 딴짓은 안하겠다 싶었습니다.

어린 조카가 임신했다는 소리에 눈이 헤까닥 했지만 마음이 진정되고 보니 어차피 결혼하려면 빨리 결혼해 애 낳는게 오히려 더 좋겠다 싶더군요. 그리고 그제서야 우리 조카가 어떤앤지 생각이 났습니다. 초등학교 때 같은 반 남자애들 코피 터뜨리고 다니고 커서는 자기 성추행하는 남자 의자로 내리 찍어서 경찰서 갔던 애라는걸요. 꼬신다고 넘어갈 애도 아니고 건드린다고 당하고 있을애가 아니었죠. 나중에 알았지만 역시나 꼬신것도 우리 조카, 건드린것도 우리 조카, 결혼 밀어부친것도 우리 조카.... 그래 우리 조카라면 그러고도 남을 애지요...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는대로 넙죽넙죽 술 받아 마셔 얼굴 벌개서 앉아 있는 조카사위를 보니....

[자네 인생 인자 X됐네. 저 가시네가 어떤 가시네인디.... 인제 애기 때문에 도망도 못간디 어째야쓰까이... 낙장불입이여...]

뜻밖에 형수님은 보자마자 오케이 했고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식을 올렸습니다. 이후 조카손녀 보러 딱 한번 걔네 사는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제 예상대로... 우리 조사카위는 우리 조카의 노예로 살고 있었습니다. 퇴근해서 아이 씻기고 간식만들고 쓸고 닦고 밥하고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물론 출근한 동안에 아이를 캐어하는 건 우리 조카지만요. 무엇보다 우리 조카같은 성질 지랄맞은 애 만나서 보듬어 주고 사는 모습이 참으로 이뻤습니다만.....

그래도 [우리 조카사위 너무 불쌍해...ㅜㅜ ] 매맞고 사는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22
  • 역시 혼자 살아야...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또 봐도 재밌 ㅋㅋㅋ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낙장불입
  • 속도위반은 추천
  • 춫천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6317 일상/생각조카사위 이야기. 46 tannenbaum 17/09/21 5997 22
6218 일상/생각10년전 4개월 간의 한국 유랑기 #완 16 호라타래 17/09/02 4158 22
8886 스포츠[사이클] 랜스 암스트롱 (6, 完) - 인생은 한 방 25 AGuyWithGlasses 19/02/19 6339 22
5309 일상/생각부쉬 드 노엘 17 소라게 17/03/28 4589 22
4396 기타딸바보와 바보딸 27 민달팽이 16/12/16 4892 22
9029 사회제1저자, 교신저자, 학회, 자리싸움, 그리고 관행 24 烏鳳 19/04/03 6311 22
1562 정치11.14 후기입니다 4 nickyo 15/11/14 7466 22
14937 오프모임아지트 멤버 모집등의 건 26 김비버 24/09/23 1933 21
14437 영화영화 A.I.(2001) 15 기아트윈스 24/02/06 1871 21
14250 창작우리가 몰랐던 유비의 참 모습 12 아침커피 23/11/04 5188 21
14154 일상/생각아내는 아직 아이의 이가 몇 개인 지 모른다 2 하마소 23/09/25 2368 21
13893 일상/생각빨간 생선과의 재회 13 심해냉장고 23/05/21 2346 21
13934 창작서울에 아직도 이런데가 있네? 7 아파 23/06/01 2559 21
14245 스포츠달리기를 해보자 #1 - 기초 20 영원한초보 23/11/02 2488 21
13135 과학/기술마름모는 왜 마름모일까? 30 몸맘 22/09/05 5041 21
12515 일상/생각내 고향 서울엔 11 사이시옷 22/02/14 3969 21
12455 경제게임이 청년 남성의 노동시장 참여를 줄였다? 28 카르스 22/01/20 4416 21
12395 일상/생각대한민국 청해부대 장병들 감사합니다 5 아리똥 22/01/01 3197 21
12147 사회IT 중소기업을 선택할 그리고 선택한 이들을 위한 -틀-의 조언 13 아재 21/10/07 4015 21
11891 방송/연예소우주를 여행하는 아미를 위한 안내서 : 1 20 순수한글닉 21/07/16 4338 21
11282 정치광주출신 민주당 지지자가 대구에서 온 국힘당 지지자 애인과 한이불 덮는 사이가 된 건에 관하여 9 Schweigen 20/12/27 4177 21
11215 역사두 번째 기회를 주는 방탄복 4 트린 20/12/11 3826 21
10869 사회섹슈얼리티 시리즈 (7) - 마이 리틀 섹시 포니 26 호라타래 20/08/18 5050 21
12126 사회산재 발생시 처벌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 1 Picard 21/09/30 3487 21
10427 정치가속주의: 전세계의 백인 지상주의자들을 고무하는 모호한 사상 - 기술자본주의적 철학은 어떻게 살인에 대한 정당화로 변형되었는가. 18 구밀복검 20/03/24 9760 21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