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6/04/21 23:05:44
Name   김보노
Subject   슬견설 - 이와 개의 목숨은 같은가

슬견설 아시나요? 중학교 교과서엔가 실린 작품인데 고려의 문신 이규보의 작품입니다.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규보의 집에 손님이 방문합니다. 손님이 말하기를 오는 길에 어떤 이가 개를 때려죽이는 걸 보고 가슴이 아파 앞으로는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러자 이규보는 어떤 사람이 이를 잡아 태워죽이는 걸 보고 마음이 아파 다시는 이를 잡지않겠다고 말합니다. 손님은 자신을 조롱한다고 여겨 어찌 개와 이가 같냐고 화를내자 이규보는 같은 생명에 경중이 다르겠냐고 말합니다.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작품을 꼽아보라고 할때, 저는 슬견설을 꼽습니다. 교과서에 실린 짧은 작품이지만 그때까지와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생각하게 만든 계기가 됐거든요.

얼마전 캣맘 논란을 보면서 슬견설이 떠올랐습니다. 귓가에 앵앵거리는 모기를 손으로 때려잡는 것과 심야에 시끄럽게 우는 고양이를 죽이는 것. 이 둘에 어떤 도덕적 차이가 있을까 하고요. 물론 고양이를 죽인다고 생각하면 끔찍합니다. 아마 이웃이 고양이를 때려 죽이는 걸 보면 멀리할거에요.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저의 입장입니다. 만약 고양이 죽이는 이웃을 말리는데 그 이웃이 모기 때려잡는 것과 마찬가지다, 라고 한다면 저는 뭐라고 반박해야할까요? 더 나아가 필요 이상의 고기를 먹겠다고 동물을 죽이는데 일조하는 주제에 위선 떨지말라고한다면요? 저는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사람이라면 대부분 그렇겠지만, 보편적으로 적용되어야 하는 도덕도 자신의 인지 범위와 애정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기르는 개는 가족과 다름 없지만 평생 좁은 곳에서 길러진 돼지의 시체를 즐겨 먹고, 나와 관계없는 사람의 범죄에는 엄벌을 요구하지만 내 친구의 범죄는 어쩔 수 없었던 일이라고 여깁니다. 어쩔 수 없이 팔은 안쪽으로 굽는가 봅니다.

미적지근한 결론이지만, 결국 타협과 관용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생명은 모두 소중하니 어떤 동물도 죽이지 말자'와 '동물을 죽이는 것은 자유다' 사이 그 어딘가, 혹은 '범죄는 가차없이 처벌해야 한다'와 '관용을 배풀어 용서하자'의 사이 어느 지점에 최선의 답이 있겠죠.



4
  • 오늘도 홍차넷에서 공부하고 갑니다 크크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공지 티타임 게시판 이용 규정 2 Toby 15/06/19 31817 7
15090 철학/종교할일 없는김에 써보는 미신(신점 사주 등) 후기 5 다른동기 24/12/04 325 0
15089 오프모임[일정변경오프]12/4 18:50~탄핵실패(하야요구) 여의도산책 11 24/12/04 874 5
15088 음악[팝송] 얼모스트 먼데이 새 앨범 "DIVE" 김치찌개 24/12/03 118 1
15087 정치바이든의 사면, 하나 남은 도미노가 무너지면. 7 코리몬테아스 24/12/02 1050 9
15086 경제고수익 알바를 해보자 (아웃라이어 AI) 55 치킨마요 24/12/01 1320 6
15084 영화잃을 것이 많아진 어른의 모험 - 모아나2 2 kaestro 24/12/01 359 4
15083 기타★결과★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당첨자 ★발표★ 9 Groot 24/12/01 343 3
15082 게임2024년 개인적인 게임 로그 2 에메트셀크 24/12/01 326 1
15081 IT/컴퓨터분류를 잘하면 중간은 간다..? 닭장군 24/12/01 410 5
15080 꿀팁/강좌스피커를 만들어보자 - 2. 인클로저 방식 4 Beemo 24/11/29 408 6
15079 방송/연예안타까운 르세라핌 9 닭장군 24/11/28 1054 1
15078 오프모임이번주 토요일 국중박 특별전시 5 치킨마요 24/11/28 537 0
15077 도서/문학거미여인의 키스 읽기 4 yanaros 24/11/28 498 8
15076 일상/생각아무말대잔치 - 미국의 비트코인 담론 14 은머리 24/11/28 672 3
15075 기타[나눔] 별다방 아메리카노 T 깊콘 1장 22 Groot 24/11/28 394 12
15074 도서/문학『원더풀랜드』-미국이 2개의 이념의 나라로 된다 인생살이 24/11/28 468 1
15073 스포츠[MLB] 블레이크 스넬 5년 182M 다저스행 김치찌개 24/11/28 166 1
15072 오프모임썸녀 만들기 조차 실패한 기념 솔크 준비 19 치킨마요 24/11/27 977 0
15071 기타나르시시스트가 교회를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이유 7 평생모쏠 24/11/27 601 0
15070 스포츠[MLB] 기쿠치 유세이 3년 63m 에인절스행 김치찌개 24/11/26 255 1
15069 정치이재명 위증교사 1심 판결 재판부 설명자료 5 과학상자 24/11/26 973 5
15068 꿀팁/강좌스피커를 만들어보자 - 1. 6 Beemo 24/11/25 540 13
15067 도서/문학『눈물을 마시는 새』 - 변화를 맞이하는 고결한 방법 1 meson 24/11/24 551 6
15066 도서/문학린치핀 - GPT 세계에서 대체 가능한 톱니바퀴를 벗어나려면 6 kaestro 24/11/24 446 1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