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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6/03/24 17:44:59수정됨
Name   골든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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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나의 윤슬을 찾아서


사람들을 짜증나게 하는 글을 쓰는 게 죄송한.. :1



어릴 때부터 나는 겁이 많았다.
엄마는 자주 매를 들고 회초리를 치곤 했는데 그럼 나는 벌벌 떨며 숨을 수 있는 모든 곳에 숨어들었다고 한다.

섬세하게 사람들 사이를 조율할 수 있고,
그날그날 일기에 “오늘은 누구누구를 만나서 좋았다”고 매번 쓰는 만큼, 마음이 온기에도 민감했지만
순간적으로 냉담하게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어른 앞에서나, 심술궂은 아이 앞에서는 기분이 확 상할 정도로 마음의 결이 맑았다.

그런 내게 세상은 왜인진 모르지만
기나긴 가족의 학대와 착취, 학창시절도 그에 따라 잇따르는 경멸과 무시, 대립, 학교폭력의 기억으로 얼룩진 어린 시절을 주었고
드디어 세상에 나왔다고 신나 소리를 지르던 대학에서는 신자유주의적 경쟁과 통조림화된 인간관계 속의 또다른 유형의 착취를 겪게 해주었다.

돼지비린내 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살면서 한이 쌓인 나는, 사람들은 모두 돼지와 같다며 죽이는 내용의 소설을 써서 공모전에 냈다가 떨어지곤 했다. 후보작이 너무 거칠다는 평이 실렸지만 그게 날 향한 말이었을지는 모르겠다. 그 대신 그 해 내 모교의 공모전에서 우수상에 뽑힌 건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아름답게 적은 글이었다.

나는 제대로 된 아버지도 제대로 된 어머니도 없이 자랐다. 그래서 세상을 몰랐다.

하지만 모르기에 가능한 아름다움도 있었다. 나는 지치지 않고 친구들의 이야기를 몇시간이고 들어주는 사람이었고, 비밀을 옮기지 않는 사람이었고, 뒷담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으며(적어도 대학 때까진 그랬다) 진심으로 학문으로 세상을 이롭게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내게 아이들은 거리감을 느끼기도 하고 코웃음을 치기도 하고 때로는 경외롭게 보기도 했지만 대체로 나와 그들은 달랐다. 나는 그들의 단톡에 없었고, 인스타그램을 하지 않았고, 유행을 몰랐고, 사실은 정말이지 그들과 통해본 적이 단 일초라도 있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어쩌면 내 존재가 그들에게 상처가 되는 순간도 분명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영향은 상호적이니까. 하지만 로스쿨까지 졸업하며 나도 바보가 아닌 한 보고 들리는 이야기와 마음에 남는 눈빛들이 있었다. 이제 더는 소유권이 아름다운 혁명의 이야기로 보이지 않고, “분당은 경기도가 아냐!” 소리치던 여자아이의 새된 혜택받고 자란 까아만 철 모르는 눈동자와 같이 떠올랐고, 너무도 동질적이고 고맥락적인 한국 사회에서 나는 사람들이 부스럭거릴 때마다 나에 대한 비웃음을 거기서 읽어냈다. “이런 사람이 우리 학교에 오다니.” 하고 썩은 미소를 짓던 남자를 눈앞에서 보는 그 아찔함과 위압감이란.

어려움이나 거리감과 같은 말로 정신과 치료사들은 대치동 등지에서 잘 교육받고 자랐을 그들이 갑자기 천둥벌거숭이인 날 보고 놀랐을 거라 잘 포장하여 알려주곤 하였지만 그건 그들도 그쪽에 가깝기에 예쁘게 포장한 말에 가깝다는 걸 나도 알고 있었다.

천민. 솔직히 그 단어로 날 정의할 수 있었고, 그렇게 본 사람들이 있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 나는 계급적 생각에 빠져들었고 러시아 혁명과 프랑스 혁명에 대한 책을 읽고 정의당에 가입해보았다. 아뿔싸. 첫 만남부터 호구조사를 당하며 지금 사는 곳이 자가냐 월세냐, (월세면) 비쌀 텐데 소리를 들었다. 같이 운동하는 기초생활수급자 장애인 동지에 대해 “그래도 기초생활수급자인데 얼마나 싹싹해. 보기 좋아.” 소리를 하는 걸 들었다.

여운형을 그리워하는 나이든 당원들은 전부 어떤 가족의 가장이었고, 나름 이 사회에서 관록이 들 만큼 든 늙은 진보당원들이었다. 20대 당원들은 그 밑에서 눈치껏 애교있게 행동하거나 싹싹하게 잡일을 했다.

나는 처음에는 20대로 오해받다가, 30대에 기혼자라고 밝힌 뒤 신선한 새 일꾼도 그렇다고 당의 중역급 나이대도 아닌 애매한 중간지대에 있었다. 그렇다고 비판을 하는 건 아니다. 그들은 대체로 친절했다.

인터넷에서, 오픈카톡에서 만난 힘들어하는 이들을 위로해주려 노력했지만 그들은 나의 위로는 계속해서 요구해서 받으면서도 지금 남편이 코피를 흘린다는 내 말이나, 내가 아파서 병원에 갔다는 말에는 소름끼치는 침묵을 지켰다. 기억도 못하는 거 같았다.

게다가 나만큼 심한 학대를 당한 자도 거의 없었다. 거기에 더해 EMDR까지 할 정도로 정면으로 학대 트라우마에 맞서싸우고 치료를 하는 자는 더 드물었다. 대부분은 부모가 주는 정서적 이점이나 금전적 이득 때문에 부모와의 관계를 유지는 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이들의 끝없는 이야기를 들어주기가 힘들다고 느꼈다. 무엇보다 동지로서의 연대를 꿈꾼 내 앞에, 얜 이정도로 힘들어봤으니 판단하지 않겠지 싶어 계산하는 눈빛이 된 후 차례차례 비현실적일 정도의 속도로 쌓인 자기의 인생의 모든 비극을 풀어내는 사람들에 대해 지친 마음이 컸다. 나는 그들의 고민상담 자판기가 아니었다. 물론, 나도 삶을 공략하듯 사는 면이 있어 누군가에게 정보를 너무 부탁해서 손절당한 적이 2번 있다는 말을 덧붙이는 게 공정한 시각일 것이다.

그래. 사람들에게서는 비린내가 났다. 돼지비린내든, 생선비린내든. 그건 곧 절박함의 다른 이름이기도 했고 우둔함의 다른 증명이기도 했다. 경제성장이 정체되고 있다고 다들 느끼는 사회의 한 장면이기도 했고 압축성장을 해오느라 개개인의 감정을 짓누른 한국이란 나라의 오늘의 낯빛이기도 했다.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면 반드시 패배하고 말 거라고, 그래서 나는 이렇게 행동하는 것뿐이라고 스스로를 속여온 많은 사회인들의 거짓말이 만든 그림자기도 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법학을 할 때는 혼돈에 질서를 부여한다는 개념 자체가 좋았다. 신법학관 일층 대강의실의 마호가니향 책상과 의자들, 그 위로 쏟아지는 선선한 바람과 햇볕이 좋았다. 더 좋은 사회를 만들어보자는 사람들의 이상이 좋았고 인권을 꿈꾸는 것이 좋았다. 나이든 형법 교수님의 따뜻함 가득한 수업이 좋았다. 범죄자에게조차 따스한 마음을 가져보려는 노교수님의 수업 속에서 형법은 차라리 시 같았다. 논문도 참 아름다웠다.

아름다움. 그런 아름다움을 찾아 살고 싶다 생각했다. 돈도 절도 없는 내가 찾아 헤매던 건 오히려 그렇기에 돈도 권위도 아니었고, 탁월함이 물감처럼 풀려 자아내는 역사 속 아름다움 같은 것들이었다.

그리고 그 위에 현실이 퐁당퐁당 얹어졌다. 끝없이 서류를 요구하며 자리에 파묻혀있는 디스크가 걸린 공무원의 시야를 맞추려면 한동안 그의 눈으로 세상을 봐야했다. 병에 걸리고 빚을 갚으면서도 허리가 새우처럼 꺾일 정도로 서류작업을 해서 복지를 겨우 받았다.

내가 겪은 나의 동년배들은 한 순간이라도 그 사람이 서열이 낮아보이거나 문화적으로 멋져보이지 않으면 잘 외면하는 이들이었다. 엄청나게, 엄청나게, 계급적이었다.

한국 실정법을 배우는 데 가장 큰 도움이 된 건 남편이 시어머니와 부동산 얘기로 옥신각신하는 걸 몇년에 걸쳐 지켜본 경험이었다.

내 또래들은 끝없이 커리어, 결혼, 출산, 육아의 코스를 매달리며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볼지에 대해 골몰했고 대형 로펌 인턴으로 나갔던 아이들이 익명 학교 커뮤니티의 댓글로 신경전이나 여론전을 했던 것 등의 의미, 그니까, 그들 하나하나가 품고 있던 참 깊은 그 마음 굴곡에 대해 헤아리게 될 수 있을 때는 여러 해가 지난 때였다.

숫자. 키. 대학. 인스타그램.
어른. 도와주는 사람의 수. 전문직. 결정사. 어플.
엄마아빠에게 얼마나 사랑받는지 자랑하는 소녀들과 집안의 부를 자랑하는 소년들. 오늘날은 역병도 들밭도 아닌 타인의 마음의 물결을 헤치고 나아가야만 성장에 이를 수 있다.

많은 것이 사람들과 함께 아른거렸다. 그럼에도 놀랍게도 사회는 오늘도 반짝 봄 햇살을 빛내며 자기 몸을 단장하고 어제와 그리 다르지 않은 일을 해나갔다. 사람들은 대체로 자기가 선한 편이라 생각했으며, 어쩌면 정말로 그랬다. 비린내나는 이들이더라도 같이 있을 때 편안한 안락감을 주는 경우가 많았다. 다만 이득이나 손해 앞에서 누군가 못 견디고 빵 터지기 전까지는. 우리는 작은 술잔 앞에서 키득거렸지.

잔뜩 가시가 돋혀있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점점 어른 말이 옳다, 손해볼 줄 알아야 한다 같은 이야기가 퍼지기도 했다. 사람들은 울타리 안에서는 서로 친절을 나눴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스승의 날 선물을 받기도 했다. 나는 점점 주위 사람들에게 이해를 받았다. 노력하던 몇 가지는 안 됐고 몇 가지는 됐다.

이제 나는 모두가 자기 이득을 위해 힘껏 달음박질치는 이 헛구역질 날 정도로 빠른 도시 서울에서 어느정도 나의 박자를 찾아간다. 남편을 만나 한결 안정된 날 보고 사람들은 밝다고 안심한다. 생존의 법칙도, 잔혹함도, 그 사이 희생양이 되는 약자들의 존재도 엇비슷하다. 달라진 건 내 마음일까 싶다. 결국 아무리 예민한 심장도 학습을 통해 면도날에 단련될 수 있는 것이다. 봄이 왔음에 감사하고, 스스로를 치유해내기 위해 정신없이 키운 강아지가 잘 자라 내 옆을 지켜주고 있음에, 8년동안 서로를 키운 애인의 존재에 감사하며 고개를 들었을 때, 고통에 고립되었던 나의 잘못도 보인다. 점점 다시 사람들에게 유행하는 영상을 보고, 음악을 듣기 시작한다. 엇비슷하지만 조금은 달라진 게 중요하다. 우리의 희망은 그에서 올테니까.

나는 아팠던 자가 일어나는 것에, 아예 아프지 않음보다 더한 희망을 본다. 왜냐면 그는 오히려 생을 누구보다 더 간절히 살아내고 싶었을 것이기에 봄이 봄인 줄 모르고 보내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9
  • 누구의 힘으로든 일어날 수 있는 이가 얼마나 강한 이인지를.
  • 성장을 위해 고난을 바라는 자의 고난은 아마도 고난이 아닐 것입니다. 고난을 감내한 자는 삶을 살아갈 준비가 되어있진 않더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삶과 싸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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