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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5/06/13 14:51:24
Name   사슴도치
Subject   감각은 어떻게 전이되는가 – 타인이 그려낸 감각의 지도
언제부턴가 감각이 낯설어졌다. 무언가를 보고도, 듣고도, 느낀 것 같지 않다. 분명히 경험한 일인데도 그 안에 있었던 감각은 흐릿하다. 사람들은 ‘좋다’고 말하고, 나도 무의식중에 그에 동의한다. 다만, 그 ‘좋음’이 과연 내 감각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이미 승인된 반응을 복제한 것인지 묻고 싶어진다.

이제 우리는 대부분의 경험을 미리 알고 있다. 음식을 맛보기 전에 수많은 후기와 사진을 소비했고, 장소에 가기 전부터 “여긴 무조건 좋다”는 평판을 들었다. 감각은 경험보다 앞서 도착했고, 반응은 그 감각을 뒤쫓느라 허덕인다. 낯선 감각은 불편하고, 실패는 용납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안전한 선택을 되풀이한다. 이미 다녀간 사람들이 충분히 검증한 루트, 실패 확률이 낮은 경험. 그렇게 선택은 경로의존적이 되고, 좋음이 아니라 실패하지 않음이 기준이 된다.

그런 선택에는 익숙함이 주는 안도감이 있다. 하지만 동시에 감각은 무뎌진다. 어디서 본 것 같은 장면 앞에서, 우리는 다시 그 익숙한 표정을 연기한다. 감각을 소화하기도 전에 이미 그것을 표현할 언어가 정해져 있다. “확실히 퀄리티는 있더라”, “그럭저럭 만족스러웠다”, “명불허전이더라” 같은 감상들은 나만의 반응이라기보다 검열의 결과다. 다르게 느끼는 것이 어렵고, 다르게 말하는 것이 더 어렵다. 그래서 점점 솔직한 감각은 사라지고, 승인받은 반응만 반복된다.

이러한 감각의 통제는 알고리즘을 통해 정교하게 조율된다. 나는 자유롭게 고른다고 믿지만, 이미 내 과거 행동은 내 미래 선택을 제약한다. 인스타그램, 유튜브, 커머스 플랫폼, 내 클릭 이력은 나를 특정한 범주로 분류하고, 그 안에서 반복 가능성이 높은 감각을 다시 돌려준다. 맞춤형이라는 말은 개인화를 의미하지만, 실은 감각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과정이다. 그러나 감각의 선택지는 알고리즘만으로 좁혀지는 게 아니다. 사회는 이미 실패하지 않는 감각, 무난하게 통과할 수 있는 취향과 반응을 정해놓고 그 외의 것들을 배제한다. ‘이 나이쯤엔 이런 걸 좋아해야 하고’, ‘이런 사람은 저런 공간을 가야 한다’는 식의 규범이, 알고리즘의 추천과 결합되어 감각을 더욱 획일화한다. 감각은 점점 더 안전한 선택지만을 향하게 되고, 새로운 감각은 시도되기도 전에 리스크로 분류된다. 그러니 감각은 점점 좁아지고, 실패를 감각하는 일조차 불가능해진다.

그 결과, 감각은 반응으로 축소된다. 경험은 ‘해봤다’는 말 한마디로 축약되고, 느끼는 일보다 증명하는 일이 중요해진다. 맛집, 여행, 문화 생활까지 모두가 해본 것들의 리스트를 만들고, 인증된 경험들로 감각을 구성한다. 해봤다는 말이 많아질수록 정작 기억나는 건 줄어든다. 겉으로는 다채로워 보이지만 속은 놀랍도록 유사하고, 감각은 쌓이기보다 소모된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감각이 점점 외부화된다는 것이다. 실패를 경험이라 부르며, 불쾌감도 '그럴 수 있지'라고 포장한다. 어떤 감각도 그대로 직면하기보다, 다시 적절한 어휘로 정리한다. 경험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실패의 경험을 두려워한다. 진짜로 느끼는 일보다, 잘 정리하는 일이 더 중요해진다. 감각은 더 이상 내 몸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그 감각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묻는 순간, 나는 종종 스스로 대답하지 못한다.

요즘은 해보지 않아도 말할 수 있는 시대다. 유튜브 영상 몇 개, 후기 몇 줄이면 어디든 간접적으로 경험한 셈이 된다. 방구석 딜레탕트. 누군가 대신 겪어준 장면과 감각을 대리 소비하고, 그걸 마치 내 감각인 듯 말한다. ‘그거 나도 알아’, ‘그거 나도 해봤어’라는 말이 쉬워진 만큼, 정작 나만의 감각은 더 숨게 된다. 아는 척은 늘어났고, 느끼는 법은 줄어들었다. 경험은 겪는 것이 아니라, 정답을 흉내 내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삶은 점점 컨설팅처럼 변해간다. 사람들은 조언을 구하지만, 대부분은 해결책을 원하지 않는다. 선택을 대신해줄 누군가를 찾는 것이다. 실패했을 때 "왜 그렇게 했냐"는 말보다 "그때 다들 그랬다"는 말을 준비하기 위해서. 우리는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정답을 원했고, 그러다 보니 더 이상 자기 감각을 기준 삼을 수 없게 됐다. 감각도 조언도, 자기 것이 아닌 것이 일상이 되었다.

더 큰 문제는, 그렇게 되면서 감각은 점점 짧아지고, 얕아진다는 점이다. 판단은 빨라지고, 감각은 즉시화되고, 다음 자극은 금방 도착한다. 오래 생각하는 일이 귀찮아지고, 오래 느끼는 일은 사치가 된다. 반응은 넘치지만, 오래 남는 감각은 없다. 모든 것이 파편화되고, 감각은 즉시 소비된다.

감각의 주체성을 되찾는다는 건 대단한 이상이 아니다. 지금 이 감각이 내 것인지, 아니면 어딘가에서 수입된 반응인지를 묻는 일이다. 알고리즘이 추려준 옵션들 사이에서,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있었는지를 되짚어보는 일이다. 실패하지 않기 위해 고른 반응이 아닌, 낯설더라도 내 안에서 올라온 감각에 머물러보는 일이다.

진짜 감각은 기록하지 않아도 남는다.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되고, 인증하지 않아도 충분하다. 그런 감각만이 내 안에서 살아 있고, 다시 떠오를 수 있다. 경험은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생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생성의 주체는 언제나 나 자신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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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낙서입니다. 평소에 떠오르는 사고의 편린들을 메모해둔 것을 하나로 엮어봤는데, 적절한 어휘들이 떠오르지 않아서 꽤 힘든 낙서였네요.



10
  • 로크다 로크 ㄷㄷ
  • 넘 멋진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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