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들이 추천해주신 좋은 글들을 따로 모아놓는 공간입니다.
- 추천글은 매주 자문단의 투표로 선정됩니다.
Date 15/06/01 18:51:45
Name   王天君
Subject   Knock Knock
늘 발자취를 남기던 곳이 요란벅적하다. 언제나, 지금처럼 이라고 나와 많은 사람들이 덧칠해 놓았던 소망은 덧없이 낡은 부스러기로 떨어져나가는 게 아닌가 불안하다. 이 전까지 입혀놓았던 우리의 많은 일장연설과 재잘거림은 얼마나 의미가 있던 것일까. 귀퉁이에나마 보태놨었던 내 색칠의 흔적은 이미 나만을 위한 유물이 되었다. 한 때는 정갈하게 깔려있던 언어 위로 사람들이 우아하게 걸음을 옮기고 때론 앉거나 누워서 키들거렸었는데. 요즘은 가시들 사이로 발걸음을 옮기느라 신경에 날이 서게 된다. 나 역시도 복어처럼 있는 힘껏 감정을 부풀리고 촉을 갈아 옛다 받아라 하고 따끔한 말들을 갈겨댔다. 승리하되 영광은 없고 패배에는 수치가 한 가득 뒤따라온다. 지난 날을 그리워하지만 정작 발을 내딛고 있는 그 곳을 섬뜩하게 만드는 것 또한 나였다. 나 때문에 현재와 지난 날의 간격이 얼마나 아뜩해졌을지, 또 우리는 지난 날을 얼마나 전설처럼 만들며 현재를 되바라지게 만들고 있을지, 눈길로 흝고 가는 것도 미안하고 안타까웠다.

어떤 과거들은 현재와 미래에 아주 오랫동안 새겨진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과거들은 부존재의 저 편으로 쓸려나간다. 그렇게 피지알은 영원의 반댓말이 시간이라는 것을 배운 공간이었다. 익숙하던 것들은 잊혀지고, 다가오고 말 마지막은 전혀 몰랐던 것처럼 새삼스레 씹어 삼킬 수 밖에 없었다. 빈 자리는 생소한 것들로 채워지고 한때나마 그 주위를 맴돌았던 열정은 식은 채로 그저 고여있을 뿐이다. 나 혼자, 그리고 고작해야 몇몇 사람들만이 선명한 기억을 함께 더듬어보지만 이 저항도 결국은 흐름 속에서 서서히 꺾일 것이다.  차라리 죄다 잊혀지면 속이라도 편할 텐데, 그 과거들을 한 때의 것으로 치부할 만큼 강력한 현재를 나는 아직 맛보지 못했다. 아마 내가 게을러서 그렇겠지. 그렇다고 과거를 본 따 지금을 그 때 좋았던 그 시절로 되돌리기에는 나는 무력하다. 나는 과거의 부활을 믿지 않는다. 다시 한번 좋은 날은 오고 이 또한 지나가겠지만 내가 거닐었던 그 때의 그 곳은 두번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더욱 더 멋지고 근사한 나날이 앞으로 펼쳐져있더라도 내가 발을 담그고 있던 그 시간은 절대로 똑같이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 나는 어리석게도 변치 않을 무엇이 오랫동안, 아주 오랫동안 끄떡없이 이어지기를 바랬지만, 그런 게 불가능하다는 건 이미 다들 배웠으니까. 변해가는 것을 견딜 인내심도, 이를 막을 의지도, 이를 받아들이는 지혜도 나에게는 없다. 게으르고 나약한 나는 뭐라도 소리를 내보려하지만 이내 입을 다물고 나도 잘 모를 소리들을 삼킨 채 이 곳 저 곳을 그냥 떠돌다가 주저앉는다. 나 혼자 식어버린 이 마음을 나도 어쩔 줄 모르겠다.

헛헛한 마음으로 정처없이 쓸려다니다가 눈에 무언가가 밟혀 그 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익숙한 꾸밈새, 낯익은 얼굴들, 그리고 이 전에는 맡아본 적 없는 향이 떠도는 곳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언제나처럼 고상을 떨며 떠드는 소음이 반갑다. 일찍 와서 자리를 차지한 이들이 주는 충만함이 든든하고 아직 오지 않은 이들이 비워놓은 한적함에 설렌다. 새로이 터를 잡은 이 곳이 무언가가 그리워서인지 지겨워서인지 상상도 못 할 야심과 반항심의 발로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전에도 처음 문을 열고 들어설 때는 이렇게 괜히 들떴었다고 기시감인지 자기기만인지 아리송한 확신을 곱씹는다. 그렇지만 하나 분명한 건 오랜만에 아늑하다고 내가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오랜만이야. 처음이구나. 그렇게 서로 눈짓을 던지고 내 자리를 하나 마련한 채 괜히 기대에 부풀어본다. 또 그렇게 배우고, 놀라고, 즐거워하며 새로운 둥지에 나뭇가지를 하나씩 물어다 날라야지. 잃어버린 아지트를 슬퍼할 필요는 없다. 세상에는 숨겨진 곳, 아직 지어지지 않은 곳, 우리도 모르는 새 어느새 자리잡고 있는 멋진 공간들이 있다는 걸 지금 여기에서 확인하고 있으니까.

처음인 분과 처음이 아닌 모든 분들께. Welcome to our new place.    

* Toby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5-06-17 15:23)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0
    이 게시판에 등록된 王天君님의 최근 게시물


    허허 참... 이런 멋진 가입인사라니요.
    제가 무슨 자격이 있겠습니까만 환영합니다.
    반갑습니다.

    글을 읽으니 커뮤니티란 곳은 단순히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는 곳이 아닌, 모두의 시간이 차곡차곡 쌓인 곳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래서 사이트가 아프면 아프지 말라고 하고, 다시 일어나면 위아더월드 하고, 소란스럽게 하는 사람이 있으면 분을 내고 그러는가봅니다.

    다녀가시는 분들이 들이는 시간 만큼 이 곳이 가치있는 공간이 되길 바래봅니다.
    어서오세요. 긴 말보다 공감으로 반겨드리겠습니다.
    천무덕
    반갑습니다. 글을 잘 쓰신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필력에 다시 한번 감동하고 갑니다.
    삼공파일
    여운을 남기기 보다는 깔끔하게 정리하고 떠나는 게 좋겠습니다만은, 그냥 모르는 척하고 도망치듯 나와버리고 잊는 것도 하나의 방법 같습니다. 하하.
    뷰코크
    반갑습니다! 가끔 의견은 달랐어도 좋은 글 많이 써주셔서 항상 잘 읽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뵈니 더 반갑네요.
    Last of Us
    반갑습니다 자주 뵈요
    레이드
    어서오십시오. 반갑습니다. 함께 채워나가는 공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빛과 설탕
    knocking on heaven\'s door 듣고있었는데 소름..
    좋은 글 감사합니다.
    그 곳에서도 좋은 글 많이 봤었는데 여기서도 기대하겠습니다.
    반갑습니다. :)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419 기타페미니스트 vs 변호사 유튜브 토론 - 동덕여대 시위 관련 26 알료사 24/11/20 4577 33
    1418 문학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 - 오직 문학만이 줄 수 있는 위로 8 다람쥐 24/11/07 1170 32
    1417 체육/스포츠기계인간 2024년 회고 - 몸부림과 그 결과 5 Omnic 24/11/05 837 32
    1416 철학/종교비 내리는 진창을 믿음으로 인내하며 걷는 자. 8 심해냉장고 24/10/30 1096 21
    1415 정치/사회명태균 요약.txt (깁니다) 21 매뉴물있뉴 24/10/28 2060 18
    1414 일상/생각트라우마여, 안녕 7 골든햄스 24/10/21 1085 36
    1413 문학뭐야, 소설이란 이렇게 자유롭고 좋은 거였나 15 심해냉장고 24/10/20 1746 41
    1412 기타"트렌드코리아" 시리즈는 어쩌다 트렌드를 놓치게 됐을까? 28 삼유인생 24/10/15 2033 16
    1411 문학『채식주의자』 - 물결에 올라타서 8 meson 24/10/12 1083 16
    1410 요리/음식팥양갱 만드는 이야기 20 나루 24/09/28 1353 20
    1409 문화/예술2024 걸그룹 4/6 5 헬리제의우울 24/09/02 2204 13
    1408 일상/생각충동적 강아지 입양과 그 뒤에 대하여 4 골든햄스 24/08/31 1544 15
    1407 기타'수험법학' 공부방법론(1) - 실무와 학문의 차이 13 김비버 24/08/13 2201 13
    1406 일상/생각통닭마을 10 골든햄스 24/08/02 2114 31
    1405 일상/생각머리에 새똥을 맞아가지고. 12 집에 가는 제로스 24/08/02 1748 35
    1404 문화/예술[영상]"만화주제가"의 사람들 - 1. "천연색" 시절의 전설들 5 허락해주세요 24/07/24 1555 7
    1403 문학[눈마새] 나가 사회가 위기를 억제해 온 방법 10 meson 24/07/14 2040 12
    1402 문화/예술2024 걸그룹 3/6 16 헬리제의우울 24/07/14 1804 13
    1401 음악KISS OF LIFE 'Sticky' MV 분석 & 리뷰 16 메존일각 24/07/02 1709 8
    1400 정치/사회한국 언론은 어쩌다 이렇게 망가지게 되었나?(3) 26 삼유인생 24/06/19 2945 35
    1399 기타 6 하얀 24/06/13 1972 28
    1398 정치/사회낙관하기는 어렵지만, 비관적 시나리오보다는 낫게 흘러가는 한국 사회 14 카르스 24/06/03 3210 11
    1397 기타트라우마와의 공존 9 골든햄스 24/05/31 2026 23
    1396 정치/사회한국 언론은 어쩌다 이렇게 망가지게 되었나?(2) 18 삼유인생 24/05/29 3214 29
    1395 정치/사회한국언론은 어쩌다 이렇게 망가지게 되었나?(1) 8 삼유인생 24/05/20 2777 29
    목록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