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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6/08/20 00:02:40
Name   맷코발스키
Subject   보다 나는 국산 아니메. <카이 : 거울 호수의 전설>
(반말 주의해욧!)


죽은 본의 관짝을 열질 않나, 국-산 좀비물, 여름마다 찾아오시는 쓰릴라 물 등 다양한 영화들이 극장가에 걸려있었지만, 내가 이 작품을 선택한 까닭은 두가지였다. 하나는 날이 유달리 더워서였고, 또 하나는 이 애니가 순전히 국-산 애니메이션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이지 국-산 애니메이션을 무척이나 아끼는 인간이었던 것이다. 이쪽에 발을 들이게 된 계기인 스튜디오 카브의 여러 작품들부터 최근의 갓갓갓 카드까지. 물론 극장 작품들도 빼놓지 않았다. 국-산 애니의 엄청난 변곡점이 되어준 <갓갓갓 데이즈>, 진짜 고인이 된 것 같은 <고스트 메신저>, 백치미 롸벗 여캐에 수인 남캐가 등장하는 <우리별1호와 얼룩소> 등. <카이와 거울호수>의 이성강 감독의 전작인 <천년여우 여우비>도 봤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작품은 꽤 괜찮았다!

하여튼, 그러한 국뽕정신을 읊는 까닭은 이 작품이 또한 그들 국산 애니메이션들의 한계를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태까지 공통적으로 국산 애니메이션들은 이야기 전개나 캐릭터 구성이 나사빠진듯 헐거웠다. 그나마 캐릭터 구축에 성공한 몇몇 작품들은 연출이 평면적이여서 눈여겨 볼 것이 크게 없었다(자금이 없어서일까?). 결론적으로, <카이와 거울호수>는 어느 정도의 국뽕적 사명감과 애니메이션이란 장르적 관대함이 없다면 좋은 평가를 주기 어려운 작품이다. 반대로 말하면, 앞서 읊은 여러 사정을 감안했을 때는 꽤 볼만 하다.

<카이와 거울호수>라는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 작품은 안데르센의 이야기인 '눈의 여왕'에서 모티브를 따와 영웅 설화의 기본적인 전개를 덧대었다. 원작에서 하도 많은 작품이 파생되긴 했지만, 이 작품들이 그네들과 다른 점이라면 크게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는 겔다와 카이의 역할 전환이다. 세번째 이유를 생각해보면 납득할만한 것이었다. 두번째는 이야기의 배경이 서-구가 아니라 몽골이라는 점이다. 나름 탁월한 선택이었다. 어차피 이야기는 원작을 충실하게 따라가 영 흥미로운 구석이 적으니, 대신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라도 생경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번째로는, 아마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이자 이성강 감독의 재해석이 돋보이는 부분으로, 원작에 나타난 트롤의 '거울'이라는 소재에 보다 힘을 주었다는 점이다.

어쨌든, 그 해석을 보여주는 과정은 대단히 아쉬웠다. 다시 말해 <카이와 거울호수>는 이야기를 전개하는 결이 상당히 거칠다. 또는 어색하다. 캐릭터 구축 또한 마찬가지다. 그나마 겔다에 대응하는 '아타'는 흥미로울 여지는 있지만, 딱 흥미로울 여지가 있는 정도고 그녀를 설명하는 방식은 매끄럽지가 않다. '아타'는 가족에게서 버려져 그들에게 원망을 품으면서도 동시에 그리워하는 캐릭터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을 유일하게 돌봐준 '눈의 여왕'에게 기대면서 동시에 구속받고 있다. 그러나 영화는 이 복잡한 캐릭터를 자연스럽고 설득력있게 묘사하지 못한다. 그녀가 가족을 원망하고 있다는 단서는 극 중에서 계속해서 주어지지만, 원망이 명확하게 드러난 적은 거의 없다. 단지 가족들에게 실망했다는 것을 눈의 여왕이 지속적으로 언급할 따름이다. 그 반복적인 장면들은 눈의 여왕이 아타와 관객들을 설득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이 장면들은 눈의 여왕의 상징성을 생각하면 납득할 수는 있다. 그러나 대사와 연기의 상태가...) '싫어요'라고 말하는 것보다 싫음을 표현할 효과적인 방법은 훨씬 많다! 보다 다양한 장면과 연출, 대사를 통해 아타를 표현할 수 있을텐데. 캐릭터의 가능성에 비해 제시된 모양새가 얕았다.

주인공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카이'는 다소 무모하지만 용감한 어린이라는 전통적인 어린이용 만화의 주인공인데, 그는 생생한 인물이라기 보단 서사에 완전히 끌려다니고 있다. 그가 바보스러울 정도로 무모한 까닭은? 일련의 바보스럽고 용감한 짓을 통해 세상을 구할 기회를 얻도록 전개하려고! 그가 세상을 구해야 할 까닭은 그렇게 두리뭉술하게 넘어가기에, 별 설득력이 없다. 심지어 강의 정령으로부터 임무를 하달받은 이후에 그의 캐릭터성은 본 이야기의 겉치레 주제이기도 한 '가족애'에 집어삼켜진다.

주인공 양반의 캐릭터가 부각될 장면이 없는 까닭은 애초에 이 작품이 샤무이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을뿐더러, 서사가 영 예쁘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나 이 이야기의 전개는 어색한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니다. 강의 정령이 카이를 세상을 구할 용사로 납득하는 장면(나중에 제대로 된 이유가 암시되기는 하나)은 정말 심각했다. 또한 중간에 숲의 주민들과의 에피소드는 지나치게 길었다. 사실 목적지인 거울호수까지 가는 여정에서 관객은 보다 다양한 모험을 기대하게 된다. 그리고 모험을 통해 얻은 일화들이 층층이 쌓이면서 캐릭터들은 보다 성장하면서 풍부하게 보여지기 마련...이지만 이 작품은 아니다. 순록이나 기타 다른 등장 인물들은 순전히 들러리로, 이 놈들을 아주 빼버려도 이야기에 큰 지장이 없을 정도다. 순록을 늑대와 맞서기 위해 데려왔다는데, 정작 이 녀석의 역할은 눈의 여왕을 잠시 붙잡아두는 것이다. 녀석의 성질은 매우 급하고 난폭하다고 말은 하는데, 실제로 보여지는 장면에선 별로 그렇지도 않다. 이건 연출의 실패이기도 하지만. 정령들은 초반 눈요기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며, 그걸 빼곤 딱히 이 세계에 필요한 까닭을 모르겠다. '원령공주'는 배경 설정들을 극 중에서 효과적으로 사용할 줄 알았다.

애니메이션이니만큼 그림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보자. 눈의 여왕은 분명 꽤 괜찮은 디자인이다. 풍경-특히 하늘-과 도입부가 무척 아름답다. 그러나 이성강 감독의 전작인 <천년여우 여우비>를 생각해보면 좀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내가 기억하기론 전작에선 색이 상당히 아름답고 풍성하게 쓰였다. 이번 작도 여전히 아름다운 부분은 있지만, 대체로 채도가 낮고 탁하다. 눈과 얼음의 차가움을 표현하기 위해서, 그리고 초원의 유목민들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인것 같지만... 아무래도 좀 답답한 감이 있다. 그리고 음영도 아예 없거나 그라데이션으로 처리되어 전작보다 인물과 화면의 깊이감이 덜하다. 왜인지는 짐작이 가지만. 연출도 이전 작에서는 굉장히 역동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번 작에서는 유별난 데 없이 심심하다. 그래도 최후반부의 눈의 여왕 연출은 꽤나 좋았다.

아참. 그리고 더빙도 영...

매우 기대하던 작품이었기에 그만큼 아쉽다. 특히나 <카이와 거울호수>에서는 다듬었으면 괜찮았을 부분이 명확하게 보였기에. 다음 작품에선 보다 멋진 모습을 기대해본다...




+덧 : 여우비-카이 비교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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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상영관 찾느라고 이틀 고생한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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