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들이 추천해주신 좋은 글들을 따로 모아놓는 공간입니다.
- 추천글은 매주 자문단의 투표로 선정됩니다.
Date 16/10/14 00:46:09
Name   tannenbaum
Subject   보름달 빵


그 시절엔 그랬다.


면사무소 앞 게시판엔 근검, 절약, 저축을 장려하는 포스터가, 태극기 옆에는 새마을운동을 상징한다던 초록색 풀떼기 깃발이 항상 나부끼던 시절... 안쓰고 안먹고 안입으며 언젠가 우리도 부자가 되길 꿈꾸며 살던 시절... 나는 무지랭이처럼 살지만 내 아이는 반드시 출세시켜 동네에 자랑거리가 될거란 믿음으로 살던 시절... 그래서 늘 부족하고 힘들더라도 불평을 하지 않는 게 당연했던 시절.....


그 시절엔 그랬다.


마당에 그네와 연못이 있던 그리고 매일 아침이면 100원씩 용돈을 받던 나는 그 시절 시골로 보내졌다. 양변기 대신 재래식 뒷간에서 일을 봐야 했고 반찬투정과 군것질은 더이상 내가 누릴 수 없다는 걸 누가 말해주지 않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어쩌다 학교에서 불우이웃돕기 모금 이백원, 환경미화 물품을 가져오라 할때면 할아버지에게 불호령을 받았다. 왜 화를 내는지 이해 할 수 없었지만 집안에 돈이 없다는 건 어렴풋이 알았던 것 같다. 기껏해야 일년 중 가을 추매시기에야 목돈을 만질 수 있던 농사꾼에게 늘 돈이 없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닭, 오리, 강아지를 몇천원에 장에 내어 팔거나, 밤나무 감나무 자두나무에 알 굵은 걸 모아 팔지 않으면 일년 내내 집안에 십원 한장 없는 날이 더 많았다. 이런 저런 이유로 아버지 또한 나를 할아버지댁에 맡겼지만 생활비를 지원할 수 없었던 시절... 그래서 난 갖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모두 참아야만 했었다.


그 시절엔 그랬다.


그 시골에도 동네에 잘사는 유지가 있었다. 동네 사람들 대부분은 그 사람의 땅을 빌어 농사를 지었다. 할아버지도 몇 마지기 땅이 있었지만 그걸로는 우리 식구 1년 살이 밖에 되지 않았기에 땅을 빌어 소작을 했었다. 양파 수확철이면 할머니는 바쁜 농사일에도 불구하고 일당을 받으려 그 집 양파밭으로 가셨다. 종일 뙤약볕에 쪼그려 양파를 캐면 5천원을 받으셨다. 그 시절 시골살이에  5천원은 매우 큰 돈이었기에 혹시나 십장의 눈 밖에 날까 그이의 험한말에도 대거리 한번 못하시고 어떻게든 양파밭으로 가셨다.

지금도 사람을 쓰면 점심과 참을 주듯 그때도 참으로 보름달 빵과 우유를 주었다. 남자들이었으면 막걸리에 고깃거리였겠지만 작업하는 이들이 다 여자들이라 대신 주었을것이다. 할머니는 일을 다녀오시면 자기 몫의 보름달 빵과 우유를 몸빼 바지에서 꺼내주었다. 허리춤에 넣고 양파를 캐느라 뭉개진 빵과 이미 미지근하게 뎁혀진 우유였지만..... 달콤한 크림과 부드러운 빵의 촉감은 8살 아이에게 너무나 행복한 군것질거리였다. 첫날 할머니도 드시라 절반 떼어주었지만 당신께서는 단거 싫다며 너 다먹으라 하셨다. 그 이후 두번다시 묻지 않고 게눈 감추듯 나 혼자 다 먹었다.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할머니에게 같이 드시자는 말도 없이 혼자 다 먹었었다.


그 시절 할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몇년간 시골생활이 끝나고 난 다시 여기 저기 옮기며 살았다. 명절 때 두번 내려가는 일 외에는 할머니를 뵌적이 없었다. 중학생일적 여름 방학이었을거다. 문득 시골 할머니가 보고 싶어졌다. 아버지에게 용돈을 받아 터미널로 향했다. 터미널 앞에 도착하자 제과점이 보였다. 용돈에서 차비를 빼면 몇천원은 남아 뭐라도 사드리려 제과점 안으로 들어갔다. 센베와 화과자를 집어들고 문득 할머니는 단 음식을 안좋아 하시던게 기억났다. 괜히 잘 못 사는 거 아닌가 싶으면서도 안드시면 동네 사람들에게 자랑하시겠지 생각에 이왕이면 예쁜 걸로 집어 들었다.

시골집에 도착하자 할머님은 더 없이 반가워하면서 내 강아지 내 강아지 부르셨다. 그날 저녁 닭을 잡으시고 밭에서 푸성귀를 따 큰 상에 저녁을 차려주셨다. 배가 부르다는 나에게 계속 이것 저것 권하시며 더 먹으라 하셨다. 안먹겠다 하니 서운한 표정의 할머니 얼굴을 보니 어떻게든 뱃속에 자리를 만들어 꾸역 꾸역 밀어 넣으며 제과점에서 산 센베와 화과자를 내밀었다. 할머니는 니 용돈이나 하지 이런걸 뭐하러 사오냐 말씀은 하셨지만 분명 미소를 띄셨던 걸 기억한다. 단 거 안좋아 하시니 그냥 한두개 먹고 마시겠지 하던 내 예상과 달리 할머니는 화과자를 그 자리에서 반상자 가량 드셨다. 그 걸 보던 나는 몇년 전 당신께서는 단게 싫으시다며 한사코 나 다 먹으라 하던 보름달 빵이 생각이 났다. 그리고 난 갑자기 눈물이 날것 같아 감추려 소화 좀 시키고 오겠다며 도망치듯 집 뒷산으로 올라갔다.


그때 알았다.

그 시절 할머니도 달달한 크림이 들어 있는 부드러운 보름달 빵이 너무 드시고 싶었다는 걸...

그제서야 알았다....




가끔 제과점에서 화과자를 보면 할머니가 생각난다.



* 수박이두통에게보린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6-10-24 10:42)
* 관리사유 : 추천 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14
  • 눈물 찔끔.
  • 소중한 이야기 나눠주셔서 감사해요
  • 잔잔하고 따듯해요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284 일상/생각보름달 빵 6 tannenbaum 16/10/14 6085 14
1212 일상/생각나머지는 운이니까 16 카르스 22/06/05 6084 37
1070 일상/생각대학원생으로서의 나, 현대의 사제로서의 나 5 샨르우르파 21/03/15 6079 17
990 역사1911년 영국 상원의 탄생 2 코리몬테아스 20/07/27 6078 6
1363 정치/사회10년차 외신 구독자로서 느끼는 한국 언론 32 카르스 24/02/05 6076 12
1072 기타그럼에도 사랑하는 너에게. 9 쉬군 21/03/22 6068 34
1009 문화/예술초가집과 모찌떡과 랩실 7 아침커피 20/09/24 6059 17
1131 여행[스압/사진多]추석 제주 여행기 20 나단 21/09/27 6054 25
390 일상/생각누군가의 운구를 함께 한다는 것 8 그럼에도불구하고 17/03/17 6027 23
1036 정치/사회판결을 다루는 언론비판 ㅡ 이게 같은 사건인가? 4 사악군 20/12/06 6025 16
986 일상/생각Kimchi Warrior의 탄생 7 이그나티우스 20/07/19 6025 8
1303 일상/생각난임로그 part1 49 요미 23/05/21 6023 69
1194 문화/예술2022 걸그룹 1/3 17 헬리제의우울 22/05/01 6011 19
1280 일상/생각자격지심이 생겨났다가 해소되어가는 과정 14 골든햄스 23/02/22 6009 43
1305 창작서울에 아직도 이런데가 있네? 7 아파 23/06/01 6002 24
998 문화/예술술도 차도 아닌 것의 맛 7 아침커피 20/08/17 6002 19
971 정치/사회그냥 이야기 12 Schweigen 20/06/16 6002 24
1133 정치/사회청소년, 정체성의 발전, 인종관계 15 소요 21/10/03 6001 30
1050 일상/생각자다 말고 일어나 쓰는 이야기 7 Schweigen 21/01/05 5999 23
1255 체육/스포츠미식축구와 축구. 미국이 축구에 진심펀치를 사용하면 최강이 될까? 19 joel 22/12/05 5997 18
460 역사삼국통일전쟁 - 2. 살수대첩 22 눈시 17/06/26 5995 14
1093 정치/사회의도하지 않은 결과 21 mchvp 21/05/30 5993 19
1024 정치/사회공격적 현실주의자 Stephen M. Walt 교수가 바이든을 공개 지지하다. 6 열린음악회 20/10/29 5981 13
1015 일상/생각그렇게 똑같은 말 1 머랭 20/10/06 5965 17
1186 일상/생각일상의 사소한 즐거움 : 어느 향료 연구원의 이야기 (4편) 3 化神 22/04/15 5960 12
목록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