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te | 26/02/12 09:00:37 |
| Name | 구밀복검 |
| Subject | “한국은 ‘사회적 표백’ 통해 ‘무해한 시민’으로 개조되는 사회” 일본 정신과 전문의의 일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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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khan.co.kr/article/202602111800011 -서울과 도쿄를 거대한 ‘블랙홀’에 비유했다. 무슨 뜻인가. “지방에서 서울이나 도쿄로 빨려 들어간 사람들은 쉽게 원래 자리로 돌아가지 못한다. 자본주의·개인주의 관점에서 보면 반짝이는 도시의 삶이 더 바람직해 보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서울이라는 좁은 곳에 모여든 사람들은 ‘낙오하지 않기 위해’ 서로를 끊임없이 의식하고 옥죌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남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무해한 존재가 되라는 압력을 견디다 못해 질식해버린다. 블랙홀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서울과 도쿄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인구 밀도가 높은 도시가 원활하게 돌아가려면 ‘고도의 규칙’, 즉 예측 가능한 질서가 필요하다. 만원 지하철이나 좁은 아파트 단지에서 냄새나 소음, 돌발 행동은 없어야 한다는 식이다. 문제는 이런 조건이 강화되다 보면, 사람들은 질서를 단지 ‘지켜야 하는 규칙’ 정도가 아닌 ‘침범당해서는 안 되는 성역’처럼 여기게 된다는 점이다. 에밀 뒤르켐이 ‘질서가 완벽히 유지된 수도원에서는 작은 일탈도 큰 죄악으로 간주한다’고 말했듯, 지금 사회가 딱 그렇다. 예전 같으면 웃고 넘길 실수나 소음이 이제는 용서받지 못할 ‘민폐’가 되고, 척결해야 할 ‘악’으로 규정된다. 사회가 쾌적해질수록 ‘죄인’의 범위도 더 넓어진다... 가장 대표적인 존재가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본질적으로 공리주의(최대 다수의 행복)나 효율성에 따라 행동할 수 없는 존재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울고 뛰어다닌다. 즉,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는 도시의 제1원칙을 태생적으로 위반하는 존재인 셈이다. 과거에는 공동체가 아이가 성장하며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감내했지만, 표백된 사회에서는 아이의 소음은 ‘잡음’으로 규정된다. 한국의 ‘노키즈존’ 논란, ‘운동회 소음’ 사과 사건 등은 통제 불가능한 존재를 우리 곁에 두지 않겠다는 사회적 선언과 같다. 도시가 쾌적해질수록, 이에 순응하지 못하는 약자들이 가장 먼저 배제된다... ...'폐를 끼치지 않는다’는 감각은 ‘폐를 끼치는 타인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생각과 동전의 양면과 같다. 내가 완벽한 무해함을 유지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스스로 검열하는 만큼, 타인의 사소한 잡음이나 이질성도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도시의 질서가 견고해질수록 타인을 감시하는 눈초리는 더욱 날카로워지고, 작은 일탈조차 용납하지 않는 ‘검문소’ 논리가 일상을 지배하게 된다... 고밀도 압박 속에서 ‘무해한 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해 매 순간 스스로를 검열하는 청년들에게, 통제 불가능한 존재(아이)를 책임지라는 것은 시스템과 사투를 벌이라는 말과 같다. ‘나 하나 무해하게 살아남기도 벅찬데, 어떻게 유해한 존재(아이)를 세상에 내놓겠는가’라는 저항이 저출산이라는 결과로 나타나는 식이다. 결국 서울과 도쿄라는 블랙홀은 주변의 젊은 에너지를 빨아들여 화려한 빛을 내뿜지만, 그 내부에서는 인간이 소멸하며 사그라들게 될 것이다...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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