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윤리상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겁니다.
애초에 내 양심에 비추어 도저히 변론할 수 없는 이였다면, 변호인을 사임하는 것이 순리죠.
아무리 천하에 다시 없을 개차반이라고 하더라도.. 끝까지 그를 믿고 최선의 변론을 위해 고민해야 할 의무가 있는 사람이 그의 변호사이지요.
그것 못하겠다면, 변호인 역할을 더 이상 못하겠다고 조용히 물러나는 것이 맞겠고요.

최선의 변론을 위해 고민해야 할 의무를 저버린 겁니다.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겁니다.

너무 냉정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지요. 충분히 이해는 됩니다. 저도 범행 자체가 역겨운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그렇다면 애초에 변호하질 말았어야죠.

홍차클러 본인이거나, 본인의 아들딸의 변호사가 법정에서 저렇게 했다고 생각해보세요.
변호를 못하겠다면 애초에 하지를 말든가..
변호하겠다고 법정까지 가서, 너님잘못 맞고... 너님 사형당해도 쌉니다.. 라고 말하는 변호사를 눈 앞에서 본다면 기분이 어떨 것 같으신지요.

고어물은 좀 마이너한 취미인데다가 수준이 올라간지 얼마 안돼서 그렇긴 한데, 비슷한 것을 탐닉한 살인마들은 꽤 많습니다. 그리고 제가 고어물을 좋아해서 꼭 이러는 건 아닌데(..) 궤가 비슷합니다. 오히려 고어물쪽이 더 탈감정적인게, 이쪽은 시초부터가 '돈 덜 들이고 조명과 특수연출로 어디까지 연출가능할까?'에서 시작된 일종의 전문가적 취미라서... 장면 자체는 고어들이 꽤 수위가 높아보여도 앞뒤 맥락에서 주는 불쾌감은 드라마형 스릴러, 특히 현실 범죄를 바탕으로 한 작품들보다 오히려 낮습니다.

영국은 아마 메리 벨이 아닐까 싶네요. 메리 벨은 이 경우와는 좀 다르다고 보는게, 이쪽은 꽤 전형적인 도덕관념의 아노미를 보여준 케이스입니다. 그러니까 사람 발 밟는 것과 사람 죽이는 것의 윤리적 차이를 잘 느끼지 못한 케이스... 반면에 이번 한국판 살인마는 살인이 '나쁜' 행위임은 명백히 인식하지만 '이러한 이유로 합리화가 된다'라는 점이 보입니다. 아마 나이가 좀 더 먹은 상태라면 제프리 다머에 가깝지 않았을까 싶기도.

전문직, 개중에 사람의 권리와 밀접하게 연관되는 직종은 직업활동에 있어서 본질적인 요소를 침해해선 안됩니다. 건강권을 지켜줘야 하는 의사가 그 권리를 직업활동을 통해 박탈하는 행위나, 법적으로 스스로를 변호할 권리를 '대리'하는 변호사가 법적으로 불리한 행동을 의도적으로 직업활동 중에 나타내는 행위는 굉장히 심각한 직업윤리 위반입니다. 전문직은 (사실상 이것이 성취될 가능성이 없음에도) 의도적으로 자신의 기능을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하여서 소비자가 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충분하게 제공해야 될 의무가 있고, 이것이 시민 개인의 인권이나 기본권을 지키는 더 큰 원칙을 지키는 일입니다. 변호사는 변호사로 활동하는 중에는 외부 관찰자가 아닙니다. 심판자도 아니고요. 이 경계를 흐뜨러뜨리면 결과적으로 '대의를 위해서 절차를 무시하고 누군가의 권리를 침해해도 된다'는 사상을 강화합니다. 변호사가 검사랑 짝짜꿍해서 재판정 밖에서 얘기 끝내는 것과 다를 바가 없고, 한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던 시기를 보통 군부 유린기라고 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