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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10/23 03:27:38 |
Name | 알료사 |
File #1 | Screenshot_20201023_031844.jpg (1.59 MB), Download : 78 |
Subject | 도스토예프스키의 장광설에 대하여 |
출처는 독서갤러리.. ㅋ 글쓴이는 도끼 소설중 가장 박진감 넘치는 부분들만 가져와 항의하고 있으나 실상은 뇌절인 부분도 많습니다ㅋㅋㅋ 인정할건 인정해야죠. 저는 그런 뇌절부분을 과감하게 축소/제거시킨 리메이크판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고 그런 부분을 어느정도 충족시켜준 청목사의 축약본을 지인들에게 종종 추천했었는데 그럼 또 원작 훼손시킨다고 반발하거나 축약본은 읽어도 읽은거 아니라고 무시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하지만 뇌절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글쓴이의 항의 과정이 자연스레 도끼 소설의 좋은 리뷰로서 기능하는것이 재미있어 가져와 봤읍니다 ㅎ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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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러시아는 문맹률이 90% 가까이 되는 낙후 사회라서 문해율 높은 서유럽과 대비되어 조롱당하는 처지였죠 ㅋㅋ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사정이 조금 나았겠지만 그래 봐야 얼마 안 되었을 거고요. 당시 상트 페테르부르크 인구가 60만 정도인데 그 중에서 한 30% 문해자라고 해 봐야 18만.. 이건 도스토옙스키가 소설 연재하던 Russian Messenger 사정만 봐도 알 수 있는 게 죄와 벌 연재 시작하면서 잡지 구독자 500명 더 늘었다고 대박이라고 하던 시점임 ㅋㅋㅋ 악령도 도스토옙스키가 직접 나서서 3000부 따리밖에 못 팔... 더 보기
그 시절 러시아는 문맹률이 90% 가까이 되는 낙후 사회라서 문해율 높은 서유럽과 대비되어 조롱당하는 처지였죠 ㅋㅋ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사정이 조금 나았겠지만 그래 봐야 얼마 안 되었을 거고요. 당시 상트 페테르부르크 인구가 60만 정도인데 그 중에서 한 30% 문해자라고 해 봐야 18만.. 이건 도스토옙스키가 소설 연재하던 Russian Messenger 사정만 봐도 알 수 있는 게 죄와 벌 연재 시작하면서 잡지 구독자 500명 더 늘었다고 대박이라고 하던 시점임 ㅋㅋㅋ 악령도 도스토옙스키가 직접 나서서 3000부 따리밖에 못 팔았고..
말하자면 19세기의 러시아 대중이라는 게 말이 대중이지 대중이 아닌 거죠. 80년대 대중문화라고 하지만 실상 타겟은 이동진 듀나 신해철 박진영 엄재경 같은 소수 명문대생들이 타겟이듯 그때의 대중문화라는 것도 궁정 문화가 아닐 뿐이지 당대 최고 레벨의 식자층 문화예요. 그리고 그런 중하류 식자들보다 살롱에서 모이던 귀족들의 서클이 문화적인 주도권을 가졌고.. 거기다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있기는커녕 축음기도 없던 시절이니 오로지 모든 문화적 역량이 문자 매체에 집중되던 상황 ㅋㅋ 지금으로 치면 거진 뭐 롤이나 스타 대신 문학하고 저술하고 철학 가지고 랭킹전 한창 치르던 건데 수준이 낮을 수가 없죠. 오히려 그렇게 엄선된 소수만이 문단에 참여할 수 있고 창작물을 내는 족족 다 통하는 처지인 독자들이 열을 올리며 달라붙어 군소리 없이 수용적으로 읽을 수 있는 폐쇄적인 낙후 사회였다 보니 문학이 창작과 감상 양면에서 고도로 발달할 수 있었던 겁니다. 90년대 한국 하이텔 판타지 문학 생각하면 쉽죠. 그러니까 도스토옙프스키처럼 사설 좀 끼적이고 중언부언 되는대로 구술해서 본인이 이빨 턴 거 마누라가 성실하게 받아쓰기 열심히 한 티 팍팍나도 독자들이 근본 논지와 발상을 스스로 알아서 여과해서 읽었던 거고. 다시 말해 당대 소수 정예화된 독자군에겐 도스토옙스키의 장광설도 넷째 드립이나 시기상조론 비슷한 익숙한 코드라서 별로 읽는 데 장애가 안 되었던 거죠. 말이 대중 소설이지 지금으로 치면 학회에서 교수님들끼리 그사세 하는 수준인데 그게 뇌절이 아니믄 ㅋㅋㅋ
물론 도스토옙스키처럼 내면 묘사나 방백이나 대화를 통해서 갈등 구조를 전개해나갈 수도 있지만 누가 봐도 사건의 진행에 따라 자연스럽게 의미가 전달되는 식의 세련된 방식은 아니죠. '보여주기'나 '말하기'나 저자의 속내를 드러내는 서술방식이라는 점에서는 본질적으로는 그게 그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그건 말마따나 본질을 따질 때나 그런 거고 실질적으로는 감상과 이해에 차이를 주죠. 그렇다고 도스토옙스키처럼 쓰는 게 잘못되었단 건 아니지만 무슨 최선의 선택이나 필연적인 과정이라고 말하는 건 빠심이 넘 ㅋㅋ 뭐 그런 장광설을 한 호흡 한 호흡 따라가면서 도스토옙스키와 동화될 때에야 비로소 진정한 재미를 느끼게 되는 거지만요. 그리고 구구절절 뇌절 해 가며 의도를 직설적으로 숨김없이 전달하기에 오히려 더 읽기 쉽기도 하고. 어떤 면에서는 디게 투명하고 친절한 게 도스토옙스키 소설이죠. 오페라만큼 쉬움.
말하자면 19세기의 러시아 대중이라는 게 말이 대중이지 대중이 아닌 거죠. 80년대 대중문화라고 하지만 실상 타겟은 이동진 듀나 신해철 박진영 엄재경 같은 소수 명문대생들이 타겟이듯 그때의 대중문화라는 것도 궁정 문화가 아닐 뿐이지 당대 최고 레벨의 식자층 문화예요. 그리고 그런 중하류 식자들보다 살롱에서 모이던 귀족들의 서클이 문화적인 주도권을 가졌고.. 거기다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있기는커녕 축음기도 없던 시절이니 오로지 모든 문화적 역량이 문자 매체에 집중되던 상황 ㅋㅋ 지금으로 치면 거진 뭐 롤이나 스타 대신 문학하고 저술하고 철학 가지고 랭킹전 한창 치르던 건데 수준이 낮을 수가 없죠. 오히려 그렇게 엄선된 소수만이 문단에 참여할 수 있고 창작물을 내는 족족 다 통하는 처지인 독자들이 열을 올리며 달라붙어 군소리 없이 수용적으로 읽을 수 있는 폐쇄적인 낙후 사회였다 보니 문학이 창작과 감상 양면에서 고도로 발달할 수 있었던 겁니다. 90년대 한국 하이텔 판타지 문학 생각하면 쉽죠. 그러니까 도스토옙프스키처럼 사설 좀 끼적이고 중언부언 되는대로 구술해서 본인이 이빨 턴 거 마누라가 성실하게 받아쓰기 열심히 한 티 팍팍나도 독자들이 근본 논지와 발상을 스스로 알아서 여과해서 읽었던 거고. 다시 말해 당대 소수 정예화된 독자군에겐 도스토옙스키의 장광설도 넷째 드립이나 시기상조론 비슷한 익숙한 코드라서 별로 읽는 데 장애가 안 되었던 거죠. 말이 대중 소설이지 지금으로 치면 학회에서 교수님들끼리 그사세 하는 수준인데 그게 뇌절이 아니믄 ㅋㅋㅋ
물론 도스토옙스키처럼 내면 묘사나 방백이나 대화를 통해서 갈등 구조를 전개해나갈 수도 있지만 누가 봐도 사건의 진행에 따라 자연스럽게 의미가 전달되는 식의 세련된 방식은 아니죠. '보여주기'나 '말하기'나 저자의 속내를 드러내는 서술방식이라는 점에서는 본질적으로는 그게 그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그건 말마따나 본질을 따질 때나 그런 거고 실질적으로는 감상과 이해에 차이를 주죠. 그렇다고 도스토옙스키처럼 쓰는 게 잘못되었단 건 아니지만 무슨 최선의 선택이나 필연적인 과정이라고 말하는 건 빠심이 넘 ㅋㅋ 뭐 그런 장광설을 한 호흡 한 호흡 따라가면서 도스토옙스키와 동화될 때에야 비로소 진정한 재미를 느끼게 되는 거지만요. 그리고 구구절절 뇌절 해 가며 의도를 직설적으로 숨김없이 전달하기에 오히려 더 읽기 쉽기도 하고. 어떤 면에서는 디게 투명하고 친절한 게 도스토옙스키 소설이죠. 오페라만큼 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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