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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7/01/18 04:06:09
Name   와인하우스
Subject   불륜 예술의 진실을 보고 멘붕한 이야기.

며칠 전 중고서점에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집어들고 왔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인가 6학년 때인가에 접한 후로 한동안 저의 인생소설이었지요. 그 향수에 오랜만에 다시 펼쳐든 베르테르는....노답이었습니다. 도무지 읽을 수가 없더군요.


베르테르는 자의식 과잉에 민폐만 끼치는 신경증 환자였고, 왜 그의 격정에 심장을 관통당하는 느낌을 어렸을 때부터 받았는 지 모르겠습니다. 로테에게 보낸 모든 사랑의 표현들, 클라이막스인 오시안의 노래 낭독과 끝내 자살하는 장면까지, 베르테르에겐 미안한 일입니다만 '얘 왜 이래?'라는 생각이 먼저 들더군요. 제가 나이를 먹으며 차가워진 걸까요.


생각해보면 불륜 또는 비도덕적 애정을 아름다운 말로 포장하는 예술작품들이 몇몇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역시 유명한 냉정과 열정 사이죠.
물론 여기서의 쥰세이와 아오이는, 견고한 약혼관계 사이에 끼어든 베르테르만큼 경우없는 인간들은 아니지만, 작 중에서 그 둘이 점차 서로를 생각하고 거리가 가까워지는 동안 저는 그들의 원래 연인인 메미와 마빈에게 보다 마음이 쓰였어요.


쥰세이와 아오이의 재결합을 기뻐하면서도 한편에는 쥰세이에게 메미란, 아오이에게 마빈이란 과연 어떤 존재였을까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더군요. 읽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들 각 커플은 각자 형태는 다르지만, '연인'이라기보다는 '동거인'이라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말하자면 지나간, 하지만 진실되었던 사랑이 아닌 그저 자신을 찾기 이전에 정차했던 역, 정도가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아무리 소설이라지만. 그래도 둘이 그들에게 좀 미안함을 느껴야 하는 건 아닌가...


원래 이 얘기를 크리스마스 때 하려고 했는데, 러브 액츄얼리를 처음으로 그날 봤거든요. 물론 혼자 방에서요. 그런데 그 유명한 스케치북 씬
'베스트 프렌드의' '갓 결혼한 아내 상대로' '스토킹적인 연정을 품은' 놈의 행동이었다니! 그걸 또 안쓰럽게 받아주는 키이라 나이틀리와 결말 부분의 훈훈한 모습은 대체 무언가...


좋아했던, 또는 칭송받던 것들의 진실을 깨닫고 참 뭔가 허탈해지더군요. 이 작품들을 여전히 좋아하시는 분들께는 죄송합니다. 하지만 왜 도장 꽝꽝 찍힌 관계에 들이박는 걸 멋지게 그려내려는 걸까요. 쟁취할 수 없는 걸 갈망하는 게 더 애달퍼서, 상처 준 만큼 얻어내는 게 더 감동적이어서 그럴까요. 그리고 사랑에 찐따가 되는 건 왜 대개 남자인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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