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6/11/29 16:49:40
Name   진준
Subject   "절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열여섯살 때였나, 그때도 이미 어디 한 구석은 예민했나보다. 기말고사를 마치고 나는 절에 들어가기로 마음먹었다. 마침 성적표가 나오던 날이었다. 전국지도에 구긴 성적표를 떨궜다. 그 지점의 절로 들어가기로 한 것이다.

다음날 새벽부터 길을 나서 모 사찰로 향했다. 받아주십사 부탁드리는 건데 그 시절 괜찮은 옷이라곤 교복뿐이었기에 교복을 입었다. 맨 손이었다. 가슴 어느 곳에 세상을 향한 염증만이 가득했다. 날 보는 세상의 눈은 악의로 가득했고 나는 늘 그걸 못 견뎌했다. 받아주지 않으면 죽겠다고 생각했다. 떠나는 자가 무슨 말이 필요한가 싶어 유서도 남기지 않았다. 말은 늘 덧없었다.

한겨울에 땀을 뻘뻘 흘리며 사찰 안으로 들어갔다. 마침 눈앞에 스님 한 분이 계셨다.

"절에 들어가려는데요."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분은 내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뭐랄까, 세상이 참 비루하다고 해야 할까요."

무슨 대답이라도 할 거라 생각했는데 그 분은 그냥 가버렸다. 들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 자리에 한참 서서 생각했다.

절간도 또 하나의 세상이고 또 하나의 사회일 것이었다. 절의 입구도 세상과 같았다. 나를 경멸하거나 무시하거나. 사랑을 바라지 않았다. 그냥 편안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고속버스를 타고 다다른 곳은 절이 아니라 나의 또다른 일상이고 현실이었다. 돌아왔다. 숨 쉬고 사는 한 세상은 같을 것이었다.

십년도 더 넘었는데 세상을 보는 나의 눈은 여전하다. 세상은 참 비루하고 말은 덧없는 것이다.

내게 십대는 풋풋한 어느 날이 아니다.



2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4215 방송/연예'촛불', '정윤희', '인터페론' 11 Beer Inside 16/11/23 6427 5
    3575 게임게임은 그래픽이 전부가 아니다 18 Leeka 16/08/24 6427 2
    2171 의료/건강유전자변형 모기와 지카 바이러스 10 눈부심 16/02/04 6426 2
    938 기타재미있는 무한대 16 눈부심 15/09/07 6426 0
    863 의료/건강똥 도너 20 눈부심 15/08/29 6426 2
    9936 일상/생각자살유예중입니다. 30 necessary evil 19/11/03 6424 1
    6594 여행용인 E모랜드에 가려고 합니다. 20 세인트 17/11/15 6424 8
    10464 문화/예술[스포포함] 억압받는 수인 세상에서 살아남기, BNA(Brand New Animal) 4 kaestro 20/04/06 6421 1
    5543 정치[불판] 대선후보 TV 토론회 122 Toby 17/04/28 6421 1
    1674 기타로마의 몰락, 파스타의 쇠퇴. 6 마르코폴로 15/12/01 6421 4
    10249 육아/가정교육심리학의 20가지 주요 원리 1~10 6 호라타래 20/02/01 6420 21
    10111 과학/기술역사적 유물론과 행위자 연결망 이론(3) - 행위자-연결망 이론, 물질적인 것의 귀환 11 호라타래 19/12/24 6419 3
    6404 일상/생각하드 투 세이 아임 쏘리.. 28 Homo_Skeptic 17/10/11 6418 19
    2273 기타성중립화장실이란.. 20 눈부심 16/02/22 6417 0
    1612 일상/생각태어나 이렇게 열뻗치는 드라마는 처음... 11 눈부심 15/11/22 6417 0
    2307 철학/종교매너의 진화 9 눈부심 16/02/28 6416 7
    1910 일상/생각(뻘글주의)새해 첫 글은 제가..! 10 얼그레이 16/01/01 6416 0
    3517 게임[Don't Starve] 어드벤쳐 연재 #1-1 겨울의 왕 #1-1 1 Xayide 16/08/15 6415 5
    9639 정치나경원 아들, 고등학교 시절 논문 1저자 등재 논란 23 ArcanumToss 19/09/08 6412 0
    748 문화/예술음악에 관한 다섯 가지 이야기 9 뤼야 15/08/08 6412 0
    7970 방송/연예레전드가 되는 길: 이경규 vs 최양락 12 OSDRYD 18/07/30 6410 5
    6274 오프모임성수역 + 피자 + 맥주 61 선비 17/09/13 6408 3
    3176 게임FPS 혁명의 2007년 13 커피최고 16/07/02 6407 0
    3253 음악비 오는 날 듣기 좋은 축축한 노래 11 *alchemist* 16/07/12 6406 1
    4255 일상/생각"절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8 진준 16/11/29 6404 2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