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6/10/15 15:20:46
Name   Raute
Subject   요새 축구사이트에서 화제인 좌익축구 우익축구 서평
http://m.aladin.co.kr/m/mproduct.aspx?ItemId=93777188

거두절미하고 짧게 쓰면 '좌익축구가 뭔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멋있는 말인 거 같아서 한 번 책으로 써봤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좀 더 거칠게 표현하자면 현학적 수사만 나열하면서 지적 허세 부리는, 일본 스포츠 저널리즘 특유의 고약한 냄새가 가득한 형편없는 불쏘시개였습니다.

이 책은 메노티의 발언을 인용하며 좌익축구와 우익축구를 나눕니다. 근데 그 둘을 가르는 기준은 책이 끝날 때까지 제시하지 못합니다. 물론 도입부에 체력보다 기술, 규율보다는 자유, 희생보다 표현, 이런 식의 척도를 제시합니다만 책을 넘기면 그런 거 없고 볼점유 많이 하는 축구는 다 좌파로 분류해버립니다. 차라리 처음부터 좌파축구를 볼 점유에 천착하는 축구거나 공격에 집착하는 축구라고 하면 이해하겠는데 시스템과 규율을 강조하는 감독들까지 싸그리 좌파로 묶어버리니 모순이 발생하죠.

가장 우스꽝스러웠던 대목은 반 할의 우파적 성향에 대한 얘기였는데, 반 할은 좌파지만 우파적인 면모를 갖추고 있다고 쓰며 이런 것은 과르디올라 역시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A형은 소심하지만 때로는 과감한 면이 있다'와 다를 바 없는 서술이었으며, 반 할은 반 할의 스타일만 남지만 과르디올라는 바이언에 독특한 스타일을 만들었다, 반 할과 과르디올라의 축구에는 무언가 다른 점이 있다면서 그 무언가에 대한 설명 없이 과르디올라를 찬양하는 것으로 화룡점정을 이룹니다.

좌익과 우익을 나누고, 에필로그에서 독자들에게 당신은 어떤 축구를 선호하냐고 묻습니다만 정작 작가 본인조차 뭐가 좌익이고 뭐가 우익인지는 설명하지 못합니다. 앞부분에 소련의 로바노프스키를 좌익 정권 하의 우익축구로 소개합니다만 본문의 모호한 잣대를 가져다 쓴다면 로바노프스키 역시 좌익축구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귀에 걸면 귀걸이요 코에 걸면 코걸이식으로 만들어놨으니까요. 규율에 집착하면 우익이지만, 자신들이 준비한 축구에 집착하는 건 좌익이라니 이게 말이 됩니까. 실제로 로바노프스키는 좌파적 면모와 우파적 면모를 다 갖고 있고요.

메노티즘과 빌라르디즘의 대립은 대개 아르헨티나 축구로 한정지어서 논의합니다. 60년대 후반 남미축구의 이미지를 쓰레기통에 쳐박았던 에스투디안테스의 폭력축구를 메노티가 좌익축구를 부르짖으며 극복했고, 그 에스투디안테스의 일원이었던 빌라르도가 감독이 되어 수비에 몰빵하는 축구로 재등장했기 때문에 아르헨티나의 흥망을 두 사조의 대립으로 풀어나갈 수 있었죠. 극과 극이었던 이례적인 사례가 마침 한 국가에서 연속적으로 배치되었기 때문에 썰이 되는 거지 이렇게 거시적인 관점에서 다룰 수 있는 주제가 아닙니다. 그리고 저자는 완벽히 실패했고요.

그렇다고 축구사를 잘 서술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과거축구에 대한 얘기들은 조나단 윌슨의 축구전술의 역사를 발췌하여 윌슨이 범한 오류를 정정하고 짤막한 에피소드를 몇 개 추가한 수준에 그칩니다. 이건 그냥 윌슨이 쓴 책 아주 짧게 요약한 수준이에요. 이것보다 요새 빅사커에 톰 스티븐스가 쓰고 있는 현대축구의 역사가 훨씬 알차고 심도있는 분석을 제공합니다.

요컨대 이 책은 주제이자 핵심키워드인 좌익축구와 우익축구가 무엇인지 정의하는데 실패했고, 명확한 기준 없이 마구잡이로 인물과 팀들을 나열하고 윌슨의 축구사를 가져와 뒤섞은 잡탕입니다. 이걸 읽을 바에야
http://theantiquefootball.com/post/105629110568/menotti-vs-bilardo-the-battle-for-the-soul-of 이 칼럼 읽는 게 낫습니다. 영어라서 이해가 잘 안 간다고요? 괜찮습니다 이 책은 우리말로 써있지만 이해 안 가는 건 마찬가지거든요.

이 책의 주인공은 메노티가 아니라 펩입니다. 펩에 대한 맹목적 찬양이 곳곳에 묻어나옵니다. 14독일이 펩의 영향을 받았다면서 사실상 펩의 축구가 월드컵 2연패를 이룩한 셈이라는 구절에서는 집어던질 뻔 했습니다.


서평이긴 해도 순 축구 얘기라 일단 스포츠 카테고리로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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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en사랑
    책 제목만 봐도 이것이 불쏘시개인 걸 알 수 있겠군요. 다른 맥락이긴 하나, '알통 굵기가 정치 성향 좌우'가 생각나네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나무야 미안해.
    좌익축구와 우익축구 자체는 실제로 메노티라는 걸출한 명장이 썼던 말이고, 본문에서 언급한대로 아르헨티나 축구사를 논할 때는 의미있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걸 무작정 갖다붙이니 하...
    Ben사랑
    네. 아르헨티나의 특수한 사례에 한정되어 적용된다는 어구를, 그 의미도 모른채 그냥 갖다붙인..
    구밀복검
    비슷한 이유로 일본에서 출판된 축구/문화 서적들의 퀄리티는 신뢰하지 않습니다. 지엽적인 것에 과분한 분석을 하며 억지 의미부여를 하는 경향이 짙고, 전체적인 흐름에는 둔감해서. 그저 좌익 우익이란 수사만 잘 살려 쓰면 된다고 생각하네요. 현상유지적이고 기존의 요소들의 완성도를 극대화하는 매너리즘적 태도를 고수하며 전술을 순환론적(돌고 도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우익이라고 할 수 있을 테고, 혁신주의적이며 축구의 최첨단의 영역을 개척하려는 혁명가적 태도를 과시하면서 전술을 발전론적(점차 나아지는 것)인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좌익이라고 할... 더 보기
    비슷한 이유로 일본에서 출판된 축구/문화 서적들의 퀄리티는 신뢰하지 않습니다. 지엽적인 것에 과분한 분석을 하며 억지 의미부여를 하는 경향이 짙고, 전체적인 흐름에는 둔감해서. 그저 좌익 우익이란 수사만 잘 살려 쓰면 된다고 생각하네요. 현상유지적이고 기존의 요소들의 완성도를 극대화하는 매너리즘적 태도를 고수하며 전술을 순환론적(돌고 도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우익이라고 할 수 있을 테고, 혁신주의적이며 축구의 최첨단의 영역을 개척하려는 혁명가적 태도를 과시하면서 전술을 발전론적(점차 나아지는 것)인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좌익이라고 할 수 있겠죠. 미시와 거시, 개인과 부분과 팀이 필연성 있게 연결되는 새로운 전술론을 확립하려고 하는 이는 좌익일 테고, 그런 것을 추구하는 것 자체가 카오스를 늘리고 리스크를 증가시켜 패배를 유발한다고 보는 이는 우익이겠죠. 우익의 대표주자는 카펠로 쯤 될 테고, 좌익의 대표주자는 펩과 클롭을 위시한 스페니쉬/저먼 감독들일 것이고, 극좌파는 비엘사, 극우파는 빅샘 정도 되겠죠.
    마르코폴로
    박종환 감독은 파숀가요?
    구밀복검
    물리적 폭력의 활용, 정신력과 열정에 대한 강조가 파시즘의 특징이긴 하죠 ㅋㅋ
    그래도 이따금 물 건너에서도 괜찮은 글이 나올 때가 있기도 하고, 주제 자체가 워낙 흥미로워서 기대를 많이 했는데 뒷통수 제대로 맞았습니다. 다행히 옛날 선수들 설명해두는 거 보면 위키피디아 복붙은 아닌 거 같더군요. 그래봤자 조나단 윌슨 하위호환에 불과하겠지만요.
    Darwin4078
    리누스 미헬스는 어느정도일까요?
    혁명가? 혁명가 하니 김택용이 생각ㄴ...아..아닙니다.
    구밀복검
    뭐 당시 기준으로는 사민주의(제도권으로 부분 수용된 방법론) 좌파 쯤 되지 않나 싶네요.
    김택용은 나중에 용택이가 되긴 했지만 등장 당시 모습으로야 누구보다도 혁명가 맞겠죠 ㅎㅎ 이후 5년의 저프전의 양상을 결승전에서 예증했으니. 3.3 혁명은 거진 석기 시대 최고 수준 문명 부족의 반달돌칼 부대 vs 근대 초입의 머스킷 소총 부대의 전투 정도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아예 레벨 자체가 달라서 연습과 노력과 대비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죠.
    커피최고
    ㅋㅋ 뭐 원서도 읽고, 이번 번역서도 읽었지만 내용을 떠나서 이런 식으로 프레임 설정하고 들어간 것 자체가 흥미로운 컨셉이니깐요. 현실정치에서도 좌우익 짬뽕되는 마당에 교육학 전공의 프리랜서 저술가가 꽤 재미난 화두를 던졌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는 중입니다 ㅋㅋ 그 비판까지 들어가면서 비로소 완전해지고, 완성되는 거겠죠.
    언중유골님처럼 새로운 전술에 대한 접근방식으로 나누거나, 아니면 메노티가 처음 말했던 것처럼 공격지향성이나 선수들에게 부여하는 자유도에만 초점을 맞춰 좌우로 나눴으면 훨씬 괜찮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여러가지 개념을 동시에 아우르려 하다보니 모순이 발생했고, 결국 펩에게 혁명가 이미지를 크게 심어주고 싶은 펩빠의 펩비어천가가 되었다고 봅니다.
    커피최고
    ㅋㅋ 이제 일본이나 다른쪽 사람들이 ㅂㄷㅂㄷ해서 더 좋은 책 내지 글을 써내려가길 바래야죠. 그러면서 담론의 수준도 발전하는거니
    Darwin4078
    구밀복검님을 언중유골님이라고 해도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건 제가 싸줄러이기 때문이겠죠.
    아차차차 그러고 보니 그렇네요;;;
    Darwin4078
    좌익, 우익 하길래 레프트사이드, 라이트사이드 중에서 한쪽 위주의 역족, 순족 활용하는 전술 축구인가ㅍ했는데... ㅎㄷㄷ
    좌익은 좌익이져!
    저두 딱 비슷한 생각을... 왼쪽 돌파 vs 오른쪽 돌파인 줄 ㄷㄷㄷ
    축구에 정치를 가져다 붙이는 건 재미난 작업이긴 한데 말이죠. 제도나 구단 운영이 아니고 실전 경기에 들어가서도 그게 되는징..?
    소노다 우미
    전 또 왼발축구 오른발축구인줄

    사실 본문스러운 해석을 하려면 역시 야구가... 아, 이 글은 제가 쓴 댓글이 아니고 집에 있는 우미쨩이 쓴 댓글입니다. 살려주세요.
    노오오오오력을 강조하는 우익야구와 철저하게 관리해주는 좌익야구 가나요 ㅋㅋㅋㅋ
    소노다 우미
    노오오오오오력이라기보다는 투우우우우우혼 아닙니까.
    따뜻한 모닥불의 계절이 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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