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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6/07/29 17:53:00
Name   선비
Subject   진중권이 '한남충'이 아닌 이유

진중권이 ‘한남충’이 아닌 이유.
- 이 글은 진중권 교수의 칼럼에 관한 글이기도 하지만, 혐오의 라벨링에서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글입니다.


[진중권의 새論 새評] 나도 메갈리안이다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36285&yy=2016

메갈리아에 대해 쓴 진중권 교수의 칼럼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 “여자들은 왕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라는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 한 장으로 초래된 긴 인터넷 논쟁에 관한 글이다. 칼럼은 메갈리아라는 사이트를 후원하는 티셔츠를 입은 한 성우의 목소리가 극성 마초들의 항의를 이유로 게임에서 삭제되었다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이어 진중권은 한국 여성이 처해있는 성차별 현실에 관해 이야기하고, 그것은 ‘일베’로 대표되는 극단주의자들의 문제만이 아니라 “더 큰 문제는, 자신이 일베와 다르다고 굳게 믿는 남자들이 일상에서 밥 먹듯 저지르는 성차별적 언행이다. 나를 포함해 남자들은 종종 자기가 성차별 언행을 했다는 사실 자체도 의식하지 못한다. 이게 메갈에서 하는 ‘미러링’의 진짜 표적이다”라고 말한다.

나는 칼럼의 이야기에 어느 정도 동의한다. 각종 지표에서 보듯 한국의 성차별은 심각한 수준이고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남자는 거기에 은연중에 동조했거나, 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였다. 그의 말대로 그것은 단순히 ‘일베’만의 문제가 아니라 진중권과 나, 그리고 많은 한국 남자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메갈리아’가 불러온 반응이라면,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우리가 페미니즘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할 수 있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성차별을 비판한 이 칼럼에서 내 시선을 끈 건 막상 성차별을 재생산하는 표현들이었다.

일베가 별나라에서 뚝 떨어진 외계인인가? 그들은 ‘한남충’들이 일상적으로 저지르는 성차별적 언행의, 익명적이기에 더 노골적인 버전일 뿐이다.

다른 구절,

실도 여러 가닥 묶으면 밧줄이 되듯이 그 초라한 남근들이 다발로 묶여 큰 승리를 거둔 모양이다.

그리고 칼럼은 이렇게 끝이 난다.

나 같은 ‘한남충’ ‘개저씨’의 눈으로 봐도 너무들 한다. (중략) 메갈리안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 빌어먹을 상황은 나로 하여금 그 비열한 자들의 집단을 향해 이렇게 외치게 만든다. “나도 메갈리안이다.”

메갈리아가 사용하는 ‘한남충(한국 남자와 벌레를 합친 말로, 한국 남자를 비하하는 표현)’, ‘개저씨(개+아저씨의 합성어로, 중장년층 남성들을 비하하는 표현)' 등의 표현은 그들이 일상적으로 들어온 차별적 표현에 비해선 아무것도 아닐 지 모른다. 그러나 진중권은 누구인가. 50대, 남자, 교수라는 대한민국의 세대권력, 젠더권력, 문화권력의 혜택을 죄다 누리고 있는 사회적 강자이다. 그가 자신들보다 약자인 경우가 대부분일 한국 남자들에게 ‘한남충’이라는 비하의 라벨링을 스스럼없이 붙인다.

메갈리아에 소속된 여성들이 “한남 유충박멸”, “실자지” 같은 혐오적이고 극단적인 표현을 사용하는 건 그들의 받아온 피해의식의 발현과 그에 따른 미러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사회적 권력의 중심에 있는 진중권이 이러한 차별의 라벨링에 동참하는가? 그가 자신을 ‘한남충’, ‘개저씨’라고 생각한다고 해도 모든 한국 남자들에게 그러한 라벨링을 할 권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한남충’이란 표현은 한국사회에서 젠더권력을 가장 많이 누린 그와 같은 50대, 그보다는 적게 누려온 20,30대, 그리고 노인과 10대 남성을 모두 포함한다. 그들이 저질러온 성차별과 그들 또한 받아온 성차별의 정도와 빈도가 다르고, 그들이 놓여있는 사회적 맥락과 권력 또한 다르다. 그들이 지지하는 정당이 다르고, 그들의 성적 지향이 다르고, 그들의 생각과 행동 또한 모두 다르다.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메갈리아에서 사용하는 ‘한남충’이라는 단어에는, 종종 여성보다 사회적 약자로 간주되는 장애인, 성 소수자, 아동들까지 모두 포함된다는 점이다. 이렇든 특정 사회적 집단(인종이나 성별, 장애여부, 나이, 출신, 성적지향, 성정체성 등)을 싸잡아 하는 비하 발언을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 또는 증오발언이라고 한다. ‘한남충’은 한국 남자라는 하나의 원죄로 포괄하기엔 너무나 불균등한 집단에 대한 증오발언이다.

나는 메갈리아가 저지르고 있는 미러링이 정당하다거나, 정당하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최소한 메갈리아의 남성 혐오 발언에는 사회적 맥락이 있다. 그것이 정당화되느냐에 대해선 이견이 있을지언정 그들이 가지고 있는 피해의식은 이해가 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사회·젠더권력의 수혜를 누리고 있는 진중권이 재생산하는 헤이트 스피치에는 어떠한 이해 가능한 사회적 맥락이 있을까. 혹시 진중권은 이렇게 생각할지 모른다. 사회적 강자로서의 자신 같은 남자가 메갈리아의 헤이트 스피치를 너그럽게 받아드리고, 그들이 받아온 더 큰 증오에 대해 한국 여성들을 위해 싸워야한다고.

글쎄, 나는 모든 논쟁을 불러온 김자연 성우가 입었던 티셔츠에 쓰인 문장을 다시 이야기하고 싶다. “여자들은 왕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여자들에겐 혐오의 말을 그들 대신 퍼뜨려줄 왕자 또한 필요하지 않다. 나는 진중권이 칼럼에서 보여준 혐오의 라벨링에 분노하지만, 이 “빌어먹을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를 (그가 자칭했듯)‘한남충’이라고 비하하고 싶지는 않다. 그것은 진중권과 다른 맥락에 서 있는 개인들에 대한 또 다른 혐오의 낙인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김치녀’가 그래왔고, ‘홍어녀’가 그래왔고 또 '전라디언', '좌빨', '종북'이 그래왔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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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 진중권씨의 표현의 문제점을 잘 못느끼겠네요. 메갈에서 비판하는ㅡ진중권이 비판하는 한남충이 사회적 약자를 뜻하는 것 같지는 않네요 저도 진중권씨와 비슷한 생각을 했었지만 정리를 못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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