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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6/02 14:01:03
Name   머랭
Subject   파판7 리메이크, 남의 셀카 엿보는 것 같은 게임


어렸을 때, 용돈이 모자라서 파판7을 사지 못하고, 모 게임 잡지에서 나온 완벽공략집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봤죠.

나중에 파판7을 진짜로 플레이했을 때 얼마나 기분이 좋았었는지 기억하는 올드 팬입니다.

일애니류의 항마력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만. 파판7 리메이크는 남들 셀카 찍으려고 포즈 잡는 걸 계속 보고 있는 기분이네요.

 

멈춰있는 캐릭터는 예쁘고, 스샷으로 보면 잘 만들었다 귀엽다 생각이 나는데. 움직이는 걸 보면 이게 영 어색하고 이상하고, 오글거린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이 느낌을 어디서 받았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거예요. 스티커 사진 찍을 때 포즈를 잡거나 셀카를 찍으려고 예쁜 표정을 계속 짓고 있는 그거요. 자연스럽지 않고 의도적으로 꾸민 표정을 계속 짓고 있으니 부담스럽고, 이 인물들이 하는 대사에도 집중이 안 돼요. 거기다, 원작이나 시대적인 한계가 있긴 합니다만, 이 캐릭터들도 지금 관점으로 보면 독특하다고 보기 힘든 캐릭터고, 어디에선가 우리가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멋진 척 하는 대사를 3초마다 반복하거든요. 시도때도 없이 셀카 찍는 표정으로, 시도때도 없이 뻔하고 이른바 가오잡는 대사를, 너무나 예상할법한 타이밍에 하니 이게 몰입이 안될 수 밖에요.

 

오히려 여자 캐릭터들의 캐릭터성은, 분량이 늘어나면서 리메이크쪽이 원작보다 나아진 측면이 많다고 생각합니다만. 바렛트 쪽을 왜 그렇게 묘사했는지 모르겠어요. 덩치 큰 남자에 대한 모든 편견을 담아서 만든 캐릭터라고 해야 할까요. 원래도 성질이 급하고, 지능캐는 아닙니다만, 그렇다고 지금 습격을 하러 가는데 승객들한테 일일히 시비를 걸 정도로 어디가 모자란 사람은 아니었는데요. (되려 원작에서는 처음에 기차에서 대화를 걸면 클라우드더러 자리에 얌전히 앉아있으라고 하죠). 원작에서는 성질이 급하지만 조직의 사활을 걸고 활동을 하는 레지스탕스라면, 리메이크에서는 그냥 시도때도없이 별 타령 하면서 피아구별못하고 민폐끼치는 분노조절장애잖아요.

 

스토리에서 정말 문제라고 생각하는 건, 보통은 이야기를 만들 때 고민되는 지점이 통로의 처리 문제예요. 이야기 진행을 하려면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하는데, 이 이동에 대한 이야기는 반복적이기도 하고, 큰 재미를 못 주는 요소거든요. 그래서 이 사이를 어떻게 흥미롭게 메울지, 어떤 처리를 해서 이 이동에 대한 이야기는 빠르게 넘어가서, 이야기에 속도를 줄지 머리를 굴려 보는 게 좀 더 일반적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 게임은 분량을 늘리느라 이 이동을 무지하게 길게 늘려놨거든요. 리메이크를 하다 원래도 이랬나 궁금해서 원작을 해 보니, 미드가르에서 이동할 수 있는 모든 구간을 질질 끌어놨더라고요. 그 중간에 에어리스나 클라우드의 서사나, 다른 서사를 넣으려고 애쓴 건 알겠지만 저는 이게 전혀 재미가 없고 답답했어요.

 

애초에 미드가르까지로 자르는게 스토리적으로 좋은 판단이었던 것 같지는 않아요. 제게 파판7의 이야기가 더 와닿고 흥미진진했던 이유는, 미드가르 이야기로 팍 치고 흥미를 끌고 들어가서 전개되는 과정이 흥미로웠던 것도 컸거든요. 근데 애초에 이야기의 시작 격인 미드가르를 질질 끌어서 늘려놓으니, 그냥 전체적으로 질질 끌어요. 


전투 쪽은 재미있게 했고, 무기를 바꿔 끼는 것도 뭐 그냥저냥 괜찮았어요. 파티 멤버가 강제되는 건 싫기는 했지만 거슬리지는 않았고.

저품질 텍스쳐는 이따금 거슬리긴 했지만 게임 진행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었어요. 원작이 워낙 옛날 게임이기 때문에, 요즘 게임처럼 보이는 정도만 되도 저는 만족스러웠거든요. 


다만....... 저는 제가 공략집이 너덜거릴 때까지 보고 또 봤던 이 캐릭터들이, 시간이 지나 보니 촌스러워졌고(제가 나이가 든 탓도 있겠지만). 새롭게 들어간 이야기들이 그 촌스러움을 메꿔주기는 커녕 더 촌스럽게 만든 것 같아요. 굳이 표현해보자면 그래요. 제가 파판7을 좋아할 무렵, 샤기컷을 한 일본 남자아이돌을 보면 세련되고 멋지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2020년에 와서도 아직까지 샤기컷을 하고 있는 일본 남자를 보면, 그때처럼 멋있다는 느낌이 아니라 그냥 촌스럽거든요.

 

오글거림을 이야기할 때, 용7의 이야기도 종종 나오는 걸 들었는데요. 용과같이7은 오글거려도 뭐 괜찮네 하고 넘어가고 파판7은 그게 자꾸 거슬리는 이유는, 저한테는 그거예요. 용7은 애초에 노숙자들이 파이어 브레스 뿜고 비둘기 날리는 게임이잖아요. 진지한 이야기가 나오기는 해도, 시작부터 우리 컨셉 거하게 잡을 거라고 딱 치고 나가니 만화적인 전개나 영상이 나오더라도 그냥 웃기지 오글거리지는 않아요. 이야기 상에서 합의가 된 거니까요. "이건 현실은 아니고, 좀 웃기는 현실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입니다" 일종의 약속인 거죠.

 

그런데 파판7이 유독 이 오글거림에 대한 문제가 나오는 것은, 이거 진지한 이야기잖아요. 웃음기 싹 빼고 영화처럼 진짜 멋있는 이야기 할 거라고 영상에 힘주고 캐릭터에 힘 무지 줬는데, 그 캐릭터들이 응, 응! 하고 있으니 넘어가기가 어려운 거죠. 어쨌든 2020년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멋있음'의 기준이 JRPG식 가오가 되기는 어렵죠.

 


전체적으로는 옛날 소중한 게임이 고퀄리티 그래픽으로 나와서 반가웠고, 좋았고, 즐길 구석도 있었어요.

뭐, 그때는 그토록 게임 하나 사기 힘들었는데 이제 이런 걸 지를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는 기분을 느낀 것만으로도 만족하기는 해요.

하지만 다음 작품은 힘 좀 빼고 나왔으면 좋겠어요. 멋있는 척만 안 하면 10배는 멋있을 것 같은데.

저는 전체적으로 아쉽고, 2편이 나오면 세일할 때 사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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